기원전 776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올림픽이 올해 파리에서 새로운 국면에 맞이했다. 2022년 말 오픈AI가 생성 인공지능(AI) '챗GPT'를 공개한 후 처음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AI가 대회 운영 전반에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부터 이달 11일까지 진행된 2024 파리올림픽을 두고 'AI 올림픽'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AI를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스포츠에 AI를 전면 적용한 '올림픽 AI 어젠다(의제)'를 발표했다. 바흐 위원장은 "IOC는 올림픽 고유성과 스포츠다움을 보장하기 위해 변화의 대상이 아닌 변화 리더가 돼야 한다"며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전 세계적으로 AI와 스포츠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는 IOC가 최초로 AI 올림픽을 제시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심판도우미 AI로 '오심 잡는다'···대한궁사 훈련파트너까지
올림픽 공식 시간 기록원(타임키퍼) 오메가는 파리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팅 비전 기술을 활용했다. 컴퓨터 비전은 각 종목 특성을 학습한 AI 카메라가 경기 중 선수들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이다. 선수들 사이에선 유니폼에 전자태그(RFID)를 부착함으로써 느낄 불편함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특히 체조 종목에서 컴퓨터 비전 기술의 쓰임이 돋보였다. 체조 경기는 단 몇 초간 선수들이 수행하는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경기의 승부를 가르기 때문에 심판에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돼 왔다.
우선 고속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해 선수 신체 각 부분의 위치와 움직임을 미세하게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 신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3차원(3D)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후 확보된 3D 데이터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된다. 체조 종목 규칙서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동작을 평가한다. 이를테면 손 위치, 다리 각도, 회전의 정도 등 다양한 요소를 분석해 규정에 맞는지 혹은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다.
물론 이런 기술이 인간 심판을 완전히 대체하진 않는다. AI는 심판이 더 정확하고 일관된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인간 심판이 먼저 채점을 한 뒤 선수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심판들 간에 의견이 갈리면 AI 기술을 통해 최종적으로 심사한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눈으로 오프사이드 등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 사용하는 비디오판독(VAR)과 비슷한 셈이다.
체조뿐 아니라 장대 높이뛰기, 육상, 수영, 다이빙, 스키 등 다양한 종목에서도 쓰였다. 장대 높이뛰기에선 선수와 바 사이 간격, 비치발리볼에서는 선수 손이 네트를 넘었는지 여부 등을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확인했다. 수영 다이빙에선 선수의 입수 속도와 자세 등을 면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의 전 종목 석권(금 5개·은 1개·동 1개)에도 AI가 숨겨져 있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자동차는 양궁 훈련·경기 과정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양궁은 선수들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심박수가 높으면 불리하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훈련·경기 과정에서 심박수를 RFID가 아닌 AI 카메라로 측정하는 기법을 활용했다. 활시위를 당기는 선수 얼굴의 미세한 색상 변화를 감지해 심박수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현대차는 향후 장비 성능 점검에도 AI를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 5일 슈팅 시 활의 움직임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뒤 AI를 통해 활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AI 기반 영상 모션 증폭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모든 선수를 하나로" 애슬릿365·갤럭시Z플립6 눈길
"이번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도핑테스트와 관련해서 지켜야 할 수칙을 알려줄래?"
"우리 팀 숙소에서 펜싱 경기장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줘."
생성 AI가 본격 활용된다는 점도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텔은 프랑스 미스트랄 AI와 함께 AI 챗봇 '애슬릿(Athlete)365'를 공동 개발했다. 올림픽 기간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선수 1만여 명이 경기장을 탐색하고 규칙 등을 지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애슬릿365를 담은 디바이스는 삼성전자가 올림픽을 맞아 특별 제작한 '갤럭시 Z플립6 올림픽 에디션'이다. 삼성전자는 대회에 참여한 모든 선수에게 갤럭시 Z플립6를 제공하고 IOC와 협의해 시상대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이 함께 자가촬영(셀피)을 하는 '빅토리 셀피'가 가능한 이유다. 단상에 올라선 선수들이 찍은 사진은 자동으로 애슬릿365에 실시간으로 연동된다. 선수와 선수 가족, 팬들은 애슬릿365를 통해 사진을 내려받을 수 있다.
갤럭시 Z플립6로 사진만 찍는 게 아니다. 갤럭시 AI의 실시간 통역 기능은 선수들 간 언어장벽도 허물어줬다. 휴대전화 내·외부 화면(디스플레이)을 통해 서로 통역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실제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 금메달을 딴 세르비아 조라나 아루노비치 선수는 갤럭시 AI 통역 기능을 이용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아루노비치 선수가 세르비아어로 "자랑스럽고 빨리 집에 가서 축하하고 싶다"고 말하자 외부 화면에 프랑스어로 통역된 문장이 나왔다.
AI는 선수 보호에도 활용된다. 선수들을 향한 악성 댓글을 차단하는 것이다. IOC는 AI를 통해 선수를 비롯한 올림픽 관계자와 관련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을 관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엑스(X)·인스타그램·페이스북·틱톡 등 SNS 플랫폼과 협력도 다졌다.
AI 클라우드, 중계방송 재미 높이고 전력소비 줄여
이번 올림픽은 최초로 방송 생중계가 인공위성 대신 클라우드 기반으로 이뤄졌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IOC가 설립한 올림픽방송서비스(OBS)와 협력해 지난달 'OBS 클라우드 3.0'을 출시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측은 클라우드 기반 생중계를 통해 방송중계권자들의 업무 수행이 효율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원격으로 실시간 협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클라우드 이점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초고화질(UHD) 방송사 2곳을 포함한 54개 방송사가 OBS 라이브 클라우드를 사용했다.
특히 3.0버전에는 AI 기반 멀티카메라 리플레이 서비스가 결합되면서 시청 경험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OBS 멀티 카메라 리플레이 시스템'은 경기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리플레이해 시청자들이 경기 장면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육상·비치발리볼·테니스·유도·럭비 등 12개 경기장에 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은 생중계에 쓰이기 전 클라우드로 넘어간다. 영상은 단 몇 초 만에 AI 컴퓨팅으로 재구성되거나 실시간 3D 렌더링 과정을 거쳐 생중계 영상에 통합된다.
올림픽 경기장의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도 알리바바 클라우드가 활용됐다. 데이터 기반 지속 가능성 솔루션인 '에너지 엑스퍼트'이다. 에너지 엑스퍼트는 35개 경기장에 적용됐다. IOC는 이를 통해 경기장 전력 소비와 전력 수요 비상 상황, 경기장 수용 능력, 경기 관련 정보, 현장 기상 조건 등 모든 경기 관련 데이터를 대시보드로 통합해 관리했다. 이 솔루션은 올림픽 e스포츠 주간에 임시 구조물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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