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오로지 개업공인중개사들에게만 전가해서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책임과 의무 외에 시장에 대한 자정이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권한이 함께 주어져야 합니다.”
지난 1984년 부동산중개업법 시행으로 공인중개업이 시장에 자리를 잡은 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공인중개업계는 그간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다양한 기여를 해왔지만, 전세사기 여파와 시장 침체, 규제 확대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법·위법 행위 근절을 위해서는 협회의 법정단체 지위 회복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와 비효율적 제도는 개선하고, 자정과 혁신을 통한 중개업의 상생 발전을 도모해 국민 주거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이종혁 회장의 포부다.
실효성 있는 전세사기 예방 위해 '법정단체화' 반드시 이뤄져야
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부동산 중개사무소 신규 개업 건수는 총 74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협회가 월별 개·폐업 현황을 집계한 지난 2015년 이후 월간 기준 최저치다.이 회장은 변화된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자격증 제도 개선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한정된 시장에서 과도한 자격증이 공급되면 서비스 자체의 질적 악화는 물론, 가격 왜곡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시험 준비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과다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공인중개사 시험의 상대평가제와 선발 예정인원 제도 도입을 통한 자격 수급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협회에 따르면 7월 기준 현재 공인중개사 자격보유자 53만여 명 가운데 21% 수준인 약 11만3000명만 개업에 나선 상황이다.
과도한 전세대출 등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전세사고 문제가 개업공인중개사들의 책임으로만 전가되면서 이런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특히 이 회장은 최근 개업공인중개사들에 대한 법적 의무의 대폭 확대가 업무량 과중과 중개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달 공인중개사의 확인 설명 의무를 확대한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시행했다. 공인중개사는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체납세금, 선순위 세입자 보증금, 전입세대 등 중개대상물에 대한 권리관계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임대인의 확정일자 부여 현황과 국세·지방세 체납 정보 등에 대한 확인 의무도 부여된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는 물론 관리비 금액의 부과방식도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이 회장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개업공인중개사의 설명사항 확대도 공인중개사에게는 임대인에 대한 정보열람 권한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추진됐다”며 “임대인이 말해주는 내용이 거짓이더라도 그 말을 믿고 의존할 수밖에 없어 단독·다가구 주택 중개를 꺼리는 상황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보다 실효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일탈행위 감시 등 자정 기능을 위해 협회에 최소한의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이 회장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전세사기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22년 국회에서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화하고, 협회에 지도 및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법안이 자동폐기된 바 있다.
이 회장은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직후 대규모 전세피해 지역을 찾아다니며 피해자와 지역 공인중개사들로부터 사건의 경위와 문제점들을 직접 확인했다”며 “행정적 감시기능이 허술했고, 권한 미비로 업계에 대한 자율적 자정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해당 부동산에 대한 권리정보 공유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거래의 평균 56%만 공인중개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나머지는 무등록 컨설팅업자와 기획부동산, 심지어 일탈 중개보조원 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이를 시정하거나 감시할 권한이 상당히 제한적인 상태”라며 “대부분의 신축빌라 전세사기 사건 등은 대부분 기획부동산, 무등록컨설팅업자들로 인한 피해”라고 말했다.
이어 “협회에서도 지난해 자체 점검을 통해 1500여 건 정도의 불법중개 신고처리 건수를 확인했지만, 과거 법정단체로 지도점검 권한을 보유하고 있던 시기와 비교하면 신고처리 건수가 6분의 1 수준에 그친다”며 “전세사기는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법정단체 지위가 회복되면 회원에 대한 감시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어 전세사기 예방에 가장 좋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협회장은 “불법 중개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협회 산하 전국 19개 시·도회와 256개 지회 지역 회원들로 구성된 지도·단속위원회도 준비돼 있다”며 “협회 법정단체화를 통해 무자격자 등 불법 중개업자들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협회의 자체적 조사를 통해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결과를 등록관청에 제공하는 등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제도적 관리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동산가격지수' 통해 빌라 임대차 시장 정보격차 해소 기대
협회는 법정단체 지위 회복 외에도 자체 혁신을 통한 국민 주거안정 노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협회가 야심차게 준비한 ‘부동산 통합지수시스템’(KARIS)이 대표적이다. KARIS는 전국 개업공인중개사들이 사용 중인 계약서 플랫폼 ‘한방’의 데이터를 통계를 가공해 제공한다. 실시간 부동산 거래동향이 반영돼 실거래가 시스템보다 신속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해당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아파트 외 다른 부동산 물건의 거래동향 정보 조회가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일하게 다가구나 빌라 같은 주택 매매나 임대차 정보도 제공돼 전세사기 예방에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전세사기 및 거래사고의 주요 요인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성이다. 해당 시스템은 국토부보다 많은 단독·다가구 임대자료를 보유하고 있어 공인중개사나 국민이 시세를 참고할 수 있다. 임대차 시장에 대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화하고, 전세사기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그는 공인중개사의 전문성 제고 노력과 함께 무등록 불법중개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재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내년 1월을 목표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개설하기 이전에 64시간 이상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준비 중”이라면서 “현업에 진입하기 전, 전문가적 소양과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은 물론 사고예방 등 실무 중심의 교육도 폭넓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우, 수습제도에만 최소 2~3년을 사용해야 개업이 가능하다”며 “국내의 경우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개설하는 경우도 많아 사고율 비중이 가장 높은 만큼 이를 개선해 철저하고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완비하겠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일회성의 불법중개행위가 처벌되도록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그는 “현행법상 일회성 중개는 불법중개행위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무자격 불법 중개업소들의 경우, 계약서 보관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현장과 법제의 괴리가 크다”며 “자격증 없는 불법중개업자가 1회라도 중개를 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어 불법중개행위의 양산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공인중개사라는 자격이 안전한 부동산 거래를 유도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자격사로 자리매김하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며 “정부도 시장 내 불법세력 척결을 위한 제도 개선과 업계 자정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중개업 육성정책과 중개업 상생발전을 위한 구조적인 지원 정책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제도화에 나서 줄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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