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이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을 하고, 좁은 골목길 평행주차도 복잡한 핸들 조작 없이 자율주행으로 손쉽게 한다. 타이어 하나가 펑크 나는 긴급 상황에서도 나머지 타이어 3개로 주행이 가능하고, 비상시 물에 떠서 이동할 수 있는 수륙양용 기능도 갖췄다.
중국 전기차 선두업체 비야디(比亞迪·BYD)의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仰望)이 출시한 초호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U8’에 탑재된 최신식 기술이다. 지난 4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핑산구 비야디 본사를 찾은 기자는 널찍한 주차장에서 직접 U8 시승 체험을 했다.
손발 까딱 않고···평행주차·360도 제자리 회전
동석한 비야디 직원 지시에 따라 평행주차를 시도했다. 좌측 주차 공간을 자동 인식한 차량이 후진해 차체 뒷부분부터 대각선으로 진입한다. 그리고는 뒷바퀴를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는 앞바퀴만 움직여 차량 앞부분을 주차공간으로 밀어 넣으며 평행주차를 완료한다. 앞차와 간격은 고작 50㎝. 최소 공간에서 평행주차를 손발 까딱 않고 완료한 것이다. 평소 복잡한 핸들 조작으로 평행주차에 애를 먹었던 기자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360도 제자리 회전 기능도 실행했다.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저속 버튼을 누르자 차체가 천천히 시계 방향(혹은 반대 방향)으로 360도 회전한다. 차체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중속은 40초, 고속은 30초 만에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쓰팡은 독립 전기 모터 4개를 핵심으로 하는 동력 시스템을 뜻한다. 바퀴마다 엔진이 달려 상황에 따라 중앙처리장치를 통해 독립적으로 바퀴 움직임의 제동이 가능하다는 것. 이쓰팡 기능은 현재 양왕의 U7(세단), U8(SUV), U9(스포츠카) 모델에 탑재된다. 양왕은 비야디가 2022년 새로 선보인 초호화 럭셔리카 브랜드로 차량 한 대 가격만 우리나라 돈으로 2억원이 넘는다.
이쓰팡 기술은 최근 비야디의 고급화 전략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왕촨푸 비야디 회장도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기술을 놓고 경쟁하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부터 스마트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최근 비야디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 스마트 기술에도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스마트 주행팀’을 만들고 엔지니어를 4000명 이상 투입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그동안 저렴한 전기차를 앞세운 비야디는 중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 1위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야디를 시작으로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 가격 출혈 경쟁이 시작됐고, 비야디의 수익성도 차츰 악화하기 시작했다. 비야디의 올 2분기 매출총이익률은 18.69%로 1분기 말보다 3.19%포인트 하락했다
비야디가 고급화 전략에 시동을 걸며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꾀하는 배경이다. 올해 4월 베이징 모터쇼에서도 산하 프리미엄 브랜드 ‘삼형제’인 양왕과 팡청바오(方程彪), 텅스(騰勢·영문명 DENZA)가 총출동했다. 비야디 전체 판매량에서 고급차 판매 비중은 약 5%로 아직은 미미하지만 차츰 넓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기술은 왕” 비야디 전기차 기술 한자리에
비야디 본사 캠퍼스에 마련된 전시관은 비야디의 최신 기술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기차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일반인에게 비공개된 이곳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데도 매일 전시관을 찾는 참관객만 수천 명에 달한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비야디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기술은 왕, 혁신은 근본(技術為王 創新為本)’이라는 큼지막한 글자와 함께 비야디가 보유한 특허증서가 빼곡히 붙어 있는 벽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은 “비야디가 보유한 특허만 4만2000건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맞은편에는 ‘장인의 벽(工匠墻)’도 있다. 끊임없이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사자성어 ‘정익구정(精益求精)’과 함께 비야디의 기술 개발에 공헌한 연구개발(R&D) 기술 엔지니어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왕촨푸 회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비야디의 경쟁력은 10만명의 엔지니어”라고 자랑한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안내원은 “현재 비야디에는 연구소 11개, R&D 연구인력 10만명이 포진해 있다”고 설명했다.
비야디는 실제로 올 상반기에만 R&D에 201억8000만 위안(약 3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전년 대비 무려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중국 제일재경일보는 이 수치가 같은 기간 테슬라(약 3조원)보다 많다며 올해 비야디의 연간 R&D 지출이 500억 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에는 △이쓰팡 기술부터 △DM-i 슈퍼 하이브리드 시스템 △배터리가 바로 차체 바닥이 되는 셀투보디(CTB, cell to body) 기술 △지능형 차체 제어 시스템 DiSus(다이서스) 기술 △전력반도체 IGBT(절연게이트양극성트랜지스터) △블레이드배터리 등 비야디가 그간 R&D에 투입한 노력의 성과를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야디 핵심 기술인 블레이드(중국명 다오펜·刀片) 배터리다. 비야디가 2020년 선보인 블레이드 배터리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배터리 셀을 얇은 칼날 형태로 촘촘히 배열해 배터리 모듈을 생략하고 곧바로 배터리팩으로 만든 게 특징이다. 무게와 부피를 줄여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안전성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야디는 현재 자사 모든 차량 모델에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최근엔 다른 전기차 업체에도 이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전시관 한쪽에서는 삼원계(NCM) 배터리와 블레이드 배터리의 '네일 침투 테스트(nail penetration test)'도 즉석에서 이뤄진다. 이 테스트는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높은 열 관리를 테스트하는 가장 엄격한 방법이다. 눈앞에서 날카로운 못이 삼원계 배터리를 뚫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솟구친다. 하지만 동일한 조건에서 블레이드 배터리는 불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는 인산철 배터리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시장의 고정관념을 바꾸며 삼원계 배터리를 누르고 중국 배터리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다. 비야디는 올해 에너지 밀도와 수명을 한층 더 높인 2세대 블레이드 배터리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노레일 등 사업 다각화 노력도
비야디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밀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지상 모노레일이다. 비야디 본사 정문으로 들어가면 머리 위로 마치 놀이공원처럼 레일이 깔려 있다. 축구장 약 95개 크기인 230만㎡의 비야디 본사에는 비야디가 자체 개발한 무인 자율주행 형식의 지상 모노레일인 ‘윈바(雲巴·구름버스)’가 운행된다. 비야디 본사 각 건물 2층마다 윈바 정거장이 설치돼 있어 직원들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기자도 직접 탑승해 봤다. 정거장은 모두 11개. 비야디 본사를 한 바퀴 도는 데 15분 남짓 걸린다. 승차감은 일반 전철을 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비야디는 약 7년에 걸쳐 50억 위안 넘게 투자해 자체 개발한 윈바를 2016년 선전 본사 캠퍼스에서 처음 선보였다. 윈바는 소형 모노레일, 이보다 좀 더 큰 중형 모노레일은 윈구이(雲軌)라 불린다. 비야디는 윈바, 윈구이가 기존 전철 투자 비용 대비 5분의 1 수준인 데다 공사 기간도 3분의 1에 불과해 전철과 버스를 보완할 수 있는 도심교통의 미래로 보고 있다.
실제로 승차 정원 약 300명 규모인 윈구이는 2017년 9월 닝샤자치구 인촨을 시작으로 충칭(2021년 4월), 선전(2022년 12월), 창사(2023년 5월), 시안(2024년 8월)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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