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갓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왕페이(王菲)의 노래에 심취했었다. 왕페이는 '첨밀밀(甜蜜蜜)'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덩리쥔(鄧麗君) 이후 중화권 최고의 디바로 불리던 가수다. 타고난 재주가 많아 한때 모델 일과 연기 활동도 했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걸작 '중경삼림'을 본 분이라면 늘 팝송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흥얼거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다 끝내 스튜어디스가 된 스낵코너 아가씨를 기억할 것이다. 준수한 용모에 우수가 깃든 경찰관 량차오웨이(梁朝偉)를 은애하며 스토킹에 가까운 돌출 행동을 서슴지 않던 그녀가 바로 왕페이다.
왕페이의 길고 가녀린 몸에서 터져나오는 고음과 몽환적인 보이스 컬러는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그녀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가 있다. 우리말로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하기를 바랄 뿐' 정도가 되겠다.
약간 느린 비트에 웬지 비감 어린 분위기가 감도는 이 노래의 시작은 이렇다. "明月幾時有(저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把酒問青天(잔을 들어 하늘에 물어본다) ~~" 달과 술 하면 시선(詩仙) 이태백 아니던가. 그런데 이 노래가 소동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수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임을 몸소 입증하시던 분이라 슬픔과 상실감이 컸다. 중국어 수업시간 때 그 소회를 이야기했더니 원어민 선생이 말없이 형광펜을 들고 화이트보드에 "人生根本上悲歡離合"라고 썼다.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란 얘기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의 부음을 종종 접한다. 만남의 기쁨이 컸던 만큼 이별이 주는 고통도 크다. 비환이합(悲歡離合),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난 지인들과의 인연 속에 세상살이의 애환이 녹아 있다.
원어민 선생은 성어 비환이합의 출전이 소동파의 사(詞) '수조가두(水調歌頭)'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소동파가 누군가. 본명이 소식(蘇軾)인 그는 수많은 문인들이 명멸한 장구한 중국 역사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걸출한 문장가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3소(三蘇)라 일컬어지며 삼부자 모두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자리씩을 꿰차고 있으니 어마어마한 문필가 집안이다. 모화사상이 충만하던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에게 소동파란 오늘날 전세계 아미들이 추앙하는 BTS 그 이상이었다. 고려 중기의 문신 김근이란 사람은 아예 두 아들의 이름을 소동파 형제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을 정도다. 김근의 큰아들이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다.
그런 천하의 소동파도 벼슬살이는 순탄치 않아 좌천성 발령으로 지방을 자주 떠돌았다. 다른 문인들처럼 인생의 비애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리들의 횡포와 무능으로 인해 민초들이 고통받는 현실 등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써 권력의 미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의 글이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동파는 형제간 우의가 꽤나 돈독했나 보다. 어느 해 추석 즈음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솟아오른 밤, 천리 먼길 떨어져 지내며 7년 동안 만나지 못한 세 살 아래 동생 소철을 그리워하면서 사 한 수를 지었으니 바로 '수조가두'다. 사는 송나라 때 유행했던 문학 형식으로 악곡의 노랫말 역할을 했다. 중국문학사에서 당대(唐代)와 송대(宋代)는 중국 시가(詩歌)문학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당대에는 시가 최고봉을 이루었고, 송대에는 사가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래서 흔히 '당시송사(唐詩宋詞)'라고 한다. 현대 중국인들도 고전 시가 가운데 당시와 송사를 가장 즐겨 읽고, 일상생활에서 당시와 송사의 명구를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소동파의 '수조가두'는 절창으로 꼽히며 예로부터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금세에 와서 새로 곡을 붙여 덩리쥔이 불렀고 10여 년 후에 왕페이가 리바이벌했다. 당대의 톱 가수들이 부른 그 노래가 바로 '단원인장구'다. 노래 제목도 사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 중국인들에게 '단원인장구'는 중추절 최고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가사며 멜로디며 땅 넓어 이별 많은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EBS <세계테마기행 - 중국한시기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김성곤 방통대 중문과 교수가 귀띔한다. 중국에 가면 중국어 입문 단계에서 배우는 '첨밀밀'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일랑 이제 그만 부르고 이 노래에 도전해 보라고. 중국인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할 거라고.
대문호가 쓴 작품을 원전으로 하는 만큼 '단원인장구'는 구절구절 상징과 비유가 넘치고 함의가 깊다. 특히 "人有悲歡離合(인생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月有陰晴圓缺(달은 흐렸다가 맑고, 차면 이지러진다)"은 인생의 애환과 천하 운행의 이치를 대비시켜 세상살이가 늘 좋거나 나쁠 수만은 없음을 간결하게 표현한 명구다. 노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但願人長久(다만 원하노니 인생 오래 오래 이어져), 千里共嬋娟(천리 밖에서나마 아름다운 저 달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동생을 생각하는 소동파의 마음이 천 년의 세월을 건너 절절하게 전해져 온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을 때 많이 애송되는 구절이다.
추석이 코앞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면 된다는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는 국민들의 마음이 비장하기만 하다. 응급실 대란 불안감 때문이다. SNS상에서는 "추석 연휴 동안 다치면 안 된다, 아프지 말자"라는 인사말이 넘친다. 웃픈 현실이다. 여권의 명절 밥상머리 민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 많은 분들의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과 정을 나눌 생각에 마음이 설렐 것이다. 이맘 때면 그래서 가황 나훈아의 '고향역' 노랫가락이 가슴을 뛰게 한다.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기분을 평생 못 느끼고 산다. 모두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아프지 마시고!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왕페이의 길고 가녀린 몸에서 터져나오는 고음과 몽환적인 보이스 컬러는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그녀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가 있다. 우리말로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하기를 바랄 뿐' 정도가 되겠다.
약간 느린 비트에 웬지 비감 어린 분위기가 감도는 이 노래의 시작은 이렇다. "明月幾時有(저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把酒問青天(잔을 들어 하늘에 물어본다) ~~" 달과 술 하면 시선(詩仙) 이태백 아니던가. 그런데 이 노래가 소동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수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임을 몸소 입증하시던 분이라 슬픔과 상실감이 컸다. 중국어 수업시간 때 그 소회를 이야기했더니 원어민 선생이 말없이 형광펜을 들고 화이트보드에 "人生根本上悲歡離合"라고 썼다.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란 얘기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의 부음을 종종 접한다. 만남의 기쁨이 컸던 만큼 이별이 주는 고통도 크다. 비환이합(悲歡離合),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난 지인들과의 인연 속에 세상살이의 애환이 녹아 있다.
원어민 선생은 성어 비환이합의 출전이 소동파의 사(詞) '수조가두(水調歌頭)'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소동파가 누군가. 본명이 소식(蘇軾)인 그는 수많은 문인들이 명멸한 장구한 중국 역사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걸출한 문장가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3소(三蘇)라 일컬어지며 삼부자 모두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자리씩을 꿰차고 있으니 어마어마한 문필가 집안이다. 모화사상이 충만하던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에게 소동파란 오늘날 전세계 아미들이 추앙하는 BTS 그 이상이었다. 고려 중기의 문신 김근이란 사람은 아예 두 아들의 이름을 소동파 형제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을 정도다. 김근의 큰아들이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다.
그런 천하의 소동파도 벼슬살이는 순탄치 않아 좌천성 발령으로 지방을 자주 떠돌았다. 다른 문인들처럼 인생의 비애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리들의 횡포와 무능으로 인해 민초들이 고통받는 현실 등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써 권력의 미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의 글이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동파는 형제간 우의가 꽤나 돈독했나 보다. 어느 해 추석 즈음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솟아오른 밤, 천리 먼길 떨어져 지내며 7년 동안 만나지 못한 세 살 아래 동생 소철을 그리워하면서 사 한 수를 지었으니 바로 '수조가두'다. 사는 송나라 때 유행했던 문학 형식으로 악곡의 노랫말 역할을 했다. 중국문학사에서 당대(唐代)와 송대(宋代)는 중국 시가(詩歌)문학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당대에는 시가 최고봉을 이루었고, 송대에는 사가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래서 흔히 '당시송사(唐詩宋詞)'라고 한다. 현대 중국인들도 고전 시가 가운데 당시와 송사를 가장 즐겨 읽고, 일상생활에서 당시와 송사의 명구를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소동파의 '수조가두'는 절창으로 꼽히며 예로부터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금세에 와서 새로 곡을 붙여 덩리쥔이 불렀고 10여 년 후에 왕페이가 리바이벌했다. 당대의 톱 가수들이 부른 그 노래가 바로 '단원인장구'다. 노래 제목도 사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 중국인들에게 '단원인장구'는 중추절 최고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가사며 멜로디며 땅 넓어 이별 많은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EBS <세계테마기행 - 중국한시기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김성곤 방통대 중문과 교수가 귀띔한다. 중국에 가면 중국어 입문 단계에서 배우는 '첨밀밀'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일랑 이제 그만 부르고 이 노래에 도전해 보라고. 중국인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할 거라고.
대문호가 쓴 작품을 원전으로 하는 만큼 '단원인장구'는 구절구절 상징과 비유가 넘치고 함의가 깊다. 특히 "人有悲歡離合(인생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月有陰晴圓缺(달은 흐렸다가 맑고, 차면 이지러진다)"은 인생의 애환과 천하 운행의 이치를 대비시켜 세상살이가 늘 좋거나 나쁠 수만은 없음을 간결하게 표현한 명구다. 노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但願人長久(다만 원하노니 인생 오래 오래 이어져), 千里共嬋娟(천리 밖에서나마 아름다운 저 달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동생을 생각하는 소동파의 마음이 천 년의 세월을 건너 절절하게 전해져 온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을 때 많이 애송되는 구절이다.
추석이 코앞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면 된다는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는 국민들의 마음이 비장하기만 하다. 응급실 대란 불안감 때문이다. SNS상에서는 "추석 연휴 동안 다치면 안 된다, 아프지 말자"라는 인사말이 넘친다. 웃픈 현실이다. 여권의 명절 밥상머리 민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 많은 분들의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과 정을 나눌 생각에 마음이 설렐 것이다. 이맘 때면 그래서 가황 나훈아의 '고향역' 노랫가락이 가슴을 뛰게 한다.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기분을 평생 못 느끼고 산다. 모두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아프지 마시고!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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