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자원이야기] 75년 동맹 깨진 영풍·고려아연에..."도대체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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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입력 2024-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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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5년 동맹 깨진 이유…영풍·고려아연 갈등

  • 최대주주 장씨 일가와 최윤범 회장의 대립, 그 배경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최대주주인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공개매수를 시도하며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고려아연은 해외 매각으로 인한 핵심 기술 유출과 국가기간산업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오랜 동업 관계였던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는 서로가 공동경영 정신을 저버렸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75년간 동맹을 이어온 두 집안이 결국 결별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고려아연의 탄생부터 분쟁의 역사까지 자세히 살펴보자.
 
글로벌 1위 제련사 고련아연은 어떤 곳일까
고려아연은 재계 26위 영풍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1974년 설립돼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연간 120만톤 규모의 아연, 납, 금, 은, 동 등 다양한 비철금속을 생산하며 세계 1위의 제련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련사업을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2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자원순환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 중이다. 이 신사업을 이끄는 이는 최윤범 회장으로, 그는 최기호 창업주의 세 아들인 최창걸, 창영, 창근 명예회장에 이어 고려아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영풍그룹의 설립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풍그룹은 1949년 황해도 출신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동업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에서 시작됐다.

해방 이후 월남한 두 사람은 서울 남대문 일대에서 각각 전기기구와 농기계를 판매하며 사업을 이어가다가, 서로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영풍기업사를 공동 창업했다. 영풍은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리에 석포제련소를 세우며 비철금속 제련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당시 일본 도호아연으로부터 기술 자문을 받으며 사업을 성장시켰고,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울산 온산에 제2 제련소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영풍과 고려아연은 각각 독립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장씨와 최씨 일가가 갈라진 이유는?
두 가문이 갈라선 이유는 우선 상대적인 지분 차이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최씨 일가가 영풍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장씨 일가가 그 지분을 사들이며 상대적으로 지분이 더 커졌다. 이를 통해 장씨 일가는 영풍에서 경영권을 강화하게 됐고, 고려아연에서도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양측의 균형이 깨지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최씨 가문이 장씨 가문보다 후손이 많다는 점도 지분 격차가 생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장병희 창업자는 자녀가 2남 2녀로 적었던 반면, 최기호 창업자는 6남 3녀를 두었고 후손이 많았다. 이로 인해 최씨 일가의 지분이 분산된 반면, 장씨 일가는 지분을 늘리며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영풍 측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악화된 계기는 고려아연이 대기업들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맞교환을 진행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영풍의 지분 가치는 희석됐고,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 한화, LG화학과 협력해 우호지분을 확대하자 영풍의 지분율은 27.49%에서 25.4%로 감소했다. 이는 영풍 측에 경영권 상실에 대한 불안을 심화시켰다.

장형진 고문은 이러한 유상증자와 자사주 맞교환이 경영권 분쟁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지적하며, 최윤범 회장이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배제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최 회장이 취임한 이후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외로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더불어 두 가문의 교류가 줄어든 것도 갈등을 심화시킨 요인이다. 장형진 고문에 따르면 2세대까지는 양측의 교류가 활발했으나, 3세대에 접어들면서 유대감이 약해졌다. 최윤범 회장과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대표는 각각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교류가 줄어들었다.

세대 차이 또한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장형진 고문은 78세, 최윤범 회장은 49세로, 세대 차이가 경영 스타일과 소통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ESG 규제 강화와 더불어 제련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해졌고, 최 회장은 이에 발맞춰 신사업 투자를 적극 추진했다.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 전략은 전통적 경영 방식을 선호했던 장형진 고문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해 이번 주 내로 공개매수가를 추가 인상할 예정이며, 양 가문의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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