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15년 만에 자민·공명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비자금 스캔들’로 얼룩진 자민당 정권에 엄중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이에 일본 정계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파란만장한 정국’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전체 465석 중 21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과반인 233석 달성에 실패했다. 자민당은 2012년 총선부터 네 차례 연속 260석 이상을 얻으며 단독 과반을 유지해 왔지만 이번에는 ‘비자금 스캔들’ 파문 속에서 겨우 191석만을 얻게 됐다.
반면 중도 보수 성향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이끄는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를 집중 공략해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크게 약진했다. 총선으로 제1야당이 된 정당이 전체 의석수의 30%에 해당하는 140석 이상을 확보한 것은 2003년 민주당이 177석을 얻은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총선 다음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리 및 집행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국민의 엄중한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도 “현재의 엄중한 안보 및 경제 상황 속에서 국정 운영에 정체가 있어선 안 되므로 국정을 제대로 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총리 지명 선거를 위한 특별국회가 다음 달 11일 열릴 전망인 가운데 그때까지 단기간에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퇴진’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공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구 아베파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면서 ‘반 이시바’의 힘이 당장은 크게 작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전에 총리 교체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를 선거의 얼굴로 내세워 또다시 선거를 치를 경우 승산이 낮아져 이번에야말로 ‘정권 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의 과반수 확보를 승패 조건으로 내걸었던 만큼, 자민당 중진 참의원 의원들 사이에서는 “총리의 책임이 막중해 계속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당분간 일본 정국은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 내에서는 몇 가지 방안들이 상정되고 있다. 먼저 어떻게든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공천 배제자 가운데 당선된 사람을 추가로 공인하는 것이다. 더불어 ‘보수계 무소속’ 당선자들을 포섭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 등 일부 야당에 대한 연정을 요청해 ‘연립 정권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선거 기간 중 이미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은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든 못하든 같은 정책을 갖고 국가 발전에 도모하려는 정당과는 협의를 긍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앞서 선거 기간 중에는 야당이 자민당과의 연정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지만 현지 언론들은 자민당의 연정 확대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바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내년 정기국회 회기나 내년도 예산안의 중의원 처리 때가 연립 확대의 목표 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총선 후 일본 정치권을 두고 언론 및 정계 소식통들은 하나같이 자민당이 일시적으로 집권당 자리를 내줬던 1994년과 유사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1994년에는 불투명한 정계 환경 속에 서로 적대관계였던 자민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고 ‘자사사(자민·사회·사키가케)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사례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동안 지속되어 온 ‘자민당 1강’ 시대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그 구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지만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국은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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