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산업별 보조금 전쟁에 돌입하며 각국 정부는 직접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보조금이 세액 공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 핵심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의 굴기에 맞서 직접 보조금 중심으로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최태원 회장)는 29일 스위스 민간 무역정책 연구기관인 GTA 데이터를 통해 세계 각국의 제조업 보조금을 분석한 결과 2015년 584억 달러에서 2023년 5502억 달러, 2024년 9월 기준 5060억 달러로 10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 5년(2015~2019년)과 비교할 때 제조업 보조금은 5142억 달러에서 2020~2024년 9월까지 1조9728억 달러로 3.8배 증가했다.
GTA가 분류한 제조업 보조금의 세부 유형별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부대출'이 6365억 달러(25.6%)로 가장 많았고,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재정보조금'이 5862억 달러(23.6%)로 둘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재정보조금은 코로나 이후 급증세를 보였다. 2020년부터 2024년 9월까지 재정보조금은 4995억 달러(25.3%)로 코로나 이전 5년에 비해 약 6배 증가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정부대출과 무역금융 등 재정보조금을 제외한 보조금 유형은 모두 비중이 감소했다.
주요국의 재정보조금 증가도 두드러졌다. 미국의 재정보조금은 코로나 이전인 2015~2019년 28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코로나 이후인 2020~2024년에는 1048억 달러로 37배 증가했다. EU 역시 코로나 전후 5년 동안 재정보조금 규모가 168억 달러에서 828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일본(4억→665억 달러), 독일(5억→584억 달러), 프랑스(0억→349억 달러) 등도 코로나 이후 재정보조금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간접 금융지원 방식이 제조업 보조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상위 5개 제조업 보조금 유형을 보면, '무역금융'이 775억 달러로 1위를 기록했고, '정부대출'이 556억 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대출보증'(131억 달러), '수출지원'(98억 달러), '현물지원'(77억 달러) 순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바이오 등 첨단 산업 분야 재정보조금이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직접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10년간 발표된 재정보조금 정책을 수혜 산업별로 분석한 결과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분야를 대상으로 한 재정보조금 규모가 코로나 이전 5년 대비 적게는 2배, 많게는 13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2024년 9월 기준 재정보조금은 총 1332억 달러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399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308억 달러), 중국(171억 달러), EU(133억 달러), 인도(106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OECD는 '산업정책의 귀환' 보고서를 통해 최근 세계적인 보조금 흐름이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늘리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공급망 및 경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본격적으로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으로 분석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우리나라도 첨단 산업에 대한 대출 및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여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며 "최근 출범한 국회 민생협의체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 법안이 의제로 오른 만큼 국가 전략 차원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정책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