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전히 미술관 건립에 열심이다. 삼성가의 이건희 구장품 기증이후 더욱 가열된 미술관 건립 붐은 좀 심각하다. 미술관이란 것이 건물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닐 터인데 여전히 건설공사형 문화시설 건립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다. 미술박물관 즉 미술관의 3대 조건으로 우리는 흔히 소장품, 사람, 건물을 말한다. 큐레이터(Curator)와 레지스트라(Registrar), 컨서베이터(Conservator), 사서(Librarian), 아키비스트(Archivist), 핸들러(Hander) 등등 많은 소장품을 조사 연구하고 수집하고 등록하며 이를 관리할 전문인력과 소장품을 안전하게 소장 관리하고, 관객들에게는 쾌적한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편하고 상쾌한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우선시 되고 중요한 것은 ‘소장품’ 즉 ‘미술품’이다. 사실 미술관은 미술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자 이를 수집, 관리하고 보존하는 시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소장품 없는 미술관이란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특히 미술관의 소장품은 해당 미술관의 설립목적과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많은 미술관은 물론 박물관은 기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장품 수집에 많은 예산과 시간과 인력을 투입한다. 미술관의 소장미술품은 미술품 이상의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미술관은 물론 미술관이 속한 지역 사회를 넘어 더 넓은 지역까지 포함해 엄청난 가치를 제공한다. 따라서 미술관은 지속적으로 소장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소장품을 수집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미술관은 전시관에 불과해 이미 미술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소장품도 없이 미술관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이는 내가 개업하려고 하는 식당이 한식집인지, 중국집인지, 일식집인지 모른 채 건물을 임대하고 실내장식을 하며, 그릇 등 집기를 장만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미술관 소장품은 다양한 문화와 시대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미술관은 미술품을 수집하고 전시함으로써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편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증진한다. 그리고 이들 소장미술품은 귀중한 학습자료로 학생, 연구자와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 자료로 제공되어 예술과 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촉진하며 관람객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고취해 다양한 시대의 살아온 예술가들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할 기회를 제공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미술관은 대중이 예술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경험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따라서 미술관은 소장품을 매개로 종종 지역 사회를 참여시키고 문화적 대화를 촉진하는 이벤트 및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문화 허브로 역할 해,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해 사회통합(Social Cohesion)을 끌어내어 문화 예술적 기능 이상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또 사회적,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미술관 소장품은 관광객을 유인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또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를 위해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컨서베이터 등 다양한 전문직종의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이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며 중요한 미술관 작품 소장은 작품의 보존 및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통해 작품의 수명을 건강하게 유지해 미래 세대에게 최대한 원형 그대로 전해주는 역할과 함께 소장을 통해 문화유산인 미술품의 도난, 손상 및 훼손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미술품의 사회적, 정서적 영향 즉 미술품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켜 관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의 제공은 물론 종종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을 반영하여 오늘날 우리의 당면한 사회 문제에 관한 토론과 논의를 하는 사회적 성찰의 기회를 촉발하기도 한다. 미술관을 위해 소장품을 수집하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 사회를 교육하고,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역사, 문화유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촉진하는 데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포함하는 모든 자료는 크든 작든, 흔하던, 희귀하던, 비싼 것과 싼 것과 관계없이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인정받는다. 미술관의 수집정책은 미술관의 심장과도 같은 해당 미술관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를 이루기 위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명시한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에 명시된 미술관의 설립목표와 목적 그리고 교육적 초점, 대중과 소장품에 대한 미술관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수집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수집정책(Collection Policy)을 수립해야 한다. 수집정책은 미술관이 관리하는 유물에 대한 미술관의 전문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직원을 위한 가이드와 대중을 위한 정보 출처 역할을 한다. 또 수집정책은 소장품의 수집에서 보존 및 관리에 이르는 책임 영역을 정의하고 특정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소장품 개발 및 관리정책”(Collections Development Policy)은 최소 5년에 한 번씩 공개되고 검토되어야 하며, 수시로 검토되고 갱신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의 경우 중장기 수집계획은 물론 연간 계획조차 수립해서 시행하는 곳은 없다. 새롭게 미술관 건립을 준비하는 기관들 조차 이런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계획도 없이 작품을 수집하겠다고 나선다. 물론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은 미술품 구입을 위한 예산이 적게는 1000만 원에서 3억 원 정도의 미미한 액수라 서너 점 밖에 구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집계획에서 수집의 대상은 일차적 특성과 이차적 한계에 따라 범위가 결정된다. 우선 일차적 특성은 미술관의 전문성이다. 어떤 장르, 어느 시대, 어떤 양식을 연구하고 조사하며 전시를 통해 교육할 것인가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작품을 수집해 미술관의 전문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술관의 컬렉션을 위해 설정하는 이차적 한계는 지리적 경계 또는 정치적인 구분이다. 특히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 작품들을 수집하는 특성화 전략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윤리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나라의 지방 공립미술관의 경우 특히 작가의 예술적 업적과 작품의 완성도 등과 상관없이 ‘지역’이라는 굴레에 갇혀 수준 이하의 작가와 작품까지 수집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미술관 작품수집에서 지역이나 출신보다 작품성 즉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와 예술적 성과보다 우선할 가치는 없다. 또 지역 작가들의 생계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중앙정부조차도 국립미술관을 문화예술진흥의 수단으로, 작가들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미술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방편으로 활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어 지방정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특히 국공사립 박물관과 미술관과 별도로 국립미술관만 따로 떼어내 시각디자인과에 배속시켜 당대의 미술문화 및 산업과 미술가들의 지원수단으로 쓰는 일은 국제적인 규범 즉 유네스코 산하 세계박물관 협회(ICOM)이 정한 “박물관 정의”(Museum Definition), “윤리강령”(Code of Ethics)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중앙정부 즉 문화관광부의 조속한 원상회복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튼 소장품 수집은 수집방법과 관계없이 우선 미술관 박물관의 수집 정책과의 관련성, 수집의 윤리성 즉 작품의 진위와 소유권 및 출처에 관한 법적 확인이 필요하다. 이후 작품이 수집 대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수집을 위해 정해진 지침에 따라 수집하는 것이 미술관장의 의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