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렸던 지난달 29일 금요일 정오. 서울 강남구 'SM유니버스' 6층의 작은 연습실에서 앳된 얼굴을 한 학생 3명이 노래 연습에 한창이다. 한 연습생은 트레이너의 지도에 따라 서툰 한국어로 그룹 에스파(aespa)의 'Live My Life'를 부른다. 보컬 트레이너는 "감정선에 더 힘줘서 마지막 한 번만 부르고 아마겟돈 연습할게요"라고 답한다.
일본 음악 전문학교 ESP에 재학 중인 학생 26명은 이틀 전부터 'K팝 트레이닝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가 엔터사와 손을 잡고 관광과 보컬·댄스 강습을 엮은 '런케이션(Learn+Vacation)' 상품으로 3일 동안 보컬·작곡·댄스 수업을 배우고, 나머지 이틀은 관광을 즐긴다.
K팝 현지 수업은 달라...폭설 탓에 관광 못해서 아쉬워
같은 시각 지하 2층에서는 댄스 수업이 한창이다. 마침 B조가 에스파 아마겟돈 노래에 맞춰 숏츠를 촬영할 차례다. 다른 수강생들은 "화이팅"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댄스 트레이너는 "카메라와 아이컨택 적극적으로 하세요"라고 지도한다. 오전 댄스 수업을 마친 오다카 고유키씨(20)는 "댄스 전공이 아니어서 수업을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잘 가르쳐 준 덕분에 촬영까지 마쳐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다카씨는 ESP 도쿄 캠퍼스 보컬전공 재학생으로 보컬·댄스 수업을 신청했다. 그는 "목소리가 높은 편인데 항상 찌르는 듯한 음색이었다"며 "이번 수업에서는 전체적으로 저음도 쓰고 높은 음을 낼 때도 째지는 소리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교토 출신인 고야마 미쿠씨(19)는 ESP 오사카 캠퍼스에서 작곡 전공으로 재학 중이다. 보컬 수업을 들었던 고야마씨는 "일본에서도 K팝 곡을 하지만 발성이나 워밍업 준비 과정이 완전히 달라서 놀랐다"며 "그쪽에서는 안 된 게 이번에 배운 것들로 접근하니 훨씬 잘됐다. 보컬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들은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는 자유시간이지만, 폭설 탓에 한국 관광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오다카씨는 "유키 한자가 눈이라는 뜻인데 나때문인가 싶다"며 웃었다. 이어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명동에 가볼 생각이다. 이제껏 부대찌개, 돼지불백, 청국장처럼 매운 음식만 먹어서 단 게 먹고 싶다"며 "뚱카롱 같은 한국 유명 디저트를 먹고 싶다"고 했다.
고야마씨는 "어제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모자를 샀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며 양털 모자를 집어들었다. 그는 "롯데타워 이런 곳을 보고 가려도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갔다"고 아쉬워했다.
"해외 K팝 팬은 예비 관광객"...서울시, '런케이션 상품' 이달까지 시범운영
서울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관광와 접목시켜 런케이션 상품인 'K컬처 캠프'를 개발했다. K팝 외에도 에스팀과 함께 패션쇼를 접목한 상품, 케이타운포유의 아이돌 헤어·메이크업 체험 상품 등이 있다. 오는 12월까지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한 후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K팝 트레이닝 캠프는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이번 일본 학생은 4번째 캠프 참여자들로 앞선 3번은 모두 중국 학생들이었다. 중국에서 K팝 학원을 다니다가 오디션에 관심을 보여 온 학생도 있었다.
12·3 계엄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한 와중에도 중국 장가항 외국어학교 학생들이 체험 학습 형태로 캠프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 이사는 "현지 교장 선생님은 빨리 들어오라고 했지만 계엄 당시 광주광역시에서 학습중이었고, 금방 안정된 덕에 스케줄을 모두 마치고 12일에 귀국할 예정이다"고 했다.
장재원 SM유니버스 대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도록 통역까지 배치해서 단순 기본 과정 아니라 이왕이면 깊게 체험할 수 있도록 전문적 과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K팝을 시작으로 다른 문화와 음식에 어린나이부터 애정을 갖게 된다"며 "이런 경험들 통해서 어린 친구들이 커리어에 쓸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한국 문화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갖고 팔로하면서 한국을 찾는 여행객도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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