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착각은 자유? 아니, 착각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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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5-01-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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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2025년 1월 1일도 그냥 여타 휴일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12월 들어서면서부터 놀라거나 분노할 일들 그리고 슬픈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해 우리 정신을 완전히 빼 놨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바로 며칠 전임에도 한참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지난달 29일 발생한 여객기 참사는 충격적이다.

참사가 발생하자 최상목 권한대행은 나름 신속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최 권한대행은 최선을 다했고 대통령실과 총리실도 최상목 권한대행을 보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건재’했을 때만큼 신속한 보고 체계가 작동됐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이런 참사 수습에는 손발이 잘 맞아야 신속한 수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최상목 권한대행과 대통령실 그리고 총리실이 손발을 맞춰가며 이런 참사를 수습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원활한 팀워크가 발휘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참사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잘 돼 있다고 믿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가지는 국민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불안감의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있다.

윤 대통령이 시대와 동떨어진, 정말 희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런 종류의 불안감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윤 대통령이 SNS를 통해 이번 참사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표하며 "이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저도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강성 우파들은 이런 대통령의 메시지에 감동받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때 아닌 계엄을 선포해 참사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이 바로 본인인데, 갑자기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이태원 참사를 떠오르게 만든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제대로 된 책임을 물었다고 보기 힘든 행동을 한 장본인이 윤 대통령이건만 이번 여객기 참사의 슬픔에 갑자기 동참하겠다고 하니 국민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꾸 등장하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현재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묵묵히 제도적 절차에 순응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소환하면 출두하고, 헌법재판소의 심리 절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공조본이 신청한 체포 영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는데, 이제 윤 대통령이 할 일은 영장 집행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 측은 이번 체포 영장 발부가 불법 무효라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 자신의 행위는 통치권자의 권한이고, 사법부 판단에 의해 발부된 체포 영장은 불법 무효라고 주장하니 과연 이를 이해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통치권자’라는 단어는 사실 1970년대 혹은 1980년대에나 들을 수 있었던 단어다. 당시 권력자는 이런 단어를 썼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스스로를 통치권자라고 표현한 사람은 필자의 기억에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권자라는 단어는 윤 대통령이 정치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를, 그리고 윤 대통령의 사고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체포 영장 발부도 이해가 안 가고, 자신의 행위가 내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윤 대통령의 언행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계엄의 정당성’이 ‘주관적 정당성’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현재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는 국민들을 조금이나마 안심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윤 대통령이 최소한의 법은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본인 스스로 수사에 협조하고 공조본에 출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윤 대통령이 상황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근거는 요사이 나오는 여론조사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공정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6일 발표한 여론조사(2024년 12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13명을 대상으로 ARS 조사,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4%였다. 또한 에너지 경제신문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12월 30일에 발표한 여론조사(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ARS 조사,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를 기록했고, 민주당은 45.8%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당은 직전 조사 대비 4%포인트. 이상 빠졌고, 국민의힘은 0.9%포인트 올라 격차가 줄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을 고무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해당 조사들은 ARS 조사, 즉 기계가 응답자에게 전화로 묻는 여론조사 방식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여론조사 방식에 응답하는 계층은 정치적 고관여층이다. 이런 전화를 끝까지 받을 정도로 ‘정성’이 있는 응답자들이라면 응답자 대부분은 여당 혹은 야당의 강성 지지층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양쪽 진영의 적극 지지층 중 어느 쪽이 더 결집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만 이것이 곧 보편적인 민심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지나치게 고무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 이롭지 못하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적극 지지층의 결집 현상을 일반 여론 추이라고 착각하면서 자꾸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행동하면 보수 전체를 궤멸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복합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런 판단이 가능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는 우리 모두일 수밖에 없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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