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수질개선 없이 '물고기'만 바꾼 대한민국 정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5-01-13 00:2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1945년 이전, 우리의 열망은 해방이었고,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열망은 민주화였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퇴행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퇴행을 이야기하면서 최근 10년의 정치가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왜일까?
그 원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극단화된 진영 갈등이고, 둘째는 민주적 리더십의 상실이며, 셋째는 법치의 후퇴이다.
극단화된 진영 갈등은 종래 망국적이라 일컬어지던 영호남 갈등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갈등을 조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영 내의 강경파들이 득세함으로써 갈등을 다시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통합의 리더십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러한 진영 갈등이 순수한 이념 갈등도 아니고, 엄밀한 보수-진보의 갈등도 아닌,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된 감정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 진영 갈등이 날카로워질수록 민주정치의 본질적 속성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상실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현대의 정당은 강한 과두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일사불란한 조직과 행동이 정권 획득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과도화 및 독재화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은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두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개발독재의 성공신화에 영향받은 정치지도자들이 김영삼이나 김대중보다 박정희를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또는 대통령실) 중심의 국정운영이 계속되었고,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나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권한행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는 여야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에 마치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이고,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결정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포퓰리즘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법치의 실질화를 통해 소수자의 인권을 다수의 횡포에서 제대로 지켜주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민주화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사법농단 의혹이나 사법부 코드인사, 재판지연 등으로 인하여 사법불신이 매우 높아졌으며, 이와 맞물려 법치가 약화된 것도 민주정치의 후퇴를 막지 못한 요인의 하나이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강해지고, 이에 따른 사법의 정치화가 확산되면서 법치의 후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이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세 가지 요인과 직결되어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발동 이유로 들었던 것은 극단화된 진영 갈등의 산물이었고, 대통령이 총리나 장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비상계엄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통제장치 부족과 더불어 민주적 리더십의 상실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법치의 후퇴는 법률가인 윤 대통령이 헌법상의 계엄선포요건을 간과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이유로 윤 대통령에게 탄핵소추가 발의⋅의결된 것은 합헌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나타났던 정치적 갈등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탄핵소추안에 대한 여야의 찬반 논란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입장의 차이를 포용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찾아내는 것이 민주정치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내란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여당의 이탈표를 통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던 것이나, 이후 1개월이 되지 않아 탄핵소추사유에서 내란죄를 일방적으로 뺀다는 것도 정상적인 민주정치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 또 하나의 요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내란죄 프레임을 앞세워 한덕수 권한대행을 내란의 공범으로 지목하였고, 법률안거부권의 행사를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로 제시하였으나,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내란의 공범으로 보는 것도 무리이고, 권한대행의 법률안거부권 행사는 적법한 권한행사이기 때문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 논란은 접어 두더라도, 그에 대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소추하겠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으면 탄핵소추하겠다는 등으로 계속 압박하는 태도, 나아가 한덕수 권한대행을 국회로 불러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 모습 역시 민주적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아니었다.
 
결국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탄핵소추되어 직무정지된 채, 최상목 부총리가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을 이끌고 있으나, 불안요소가 적지 않다. 이 중차대한 상황에서 국정 전반을 통할한 경험이 없는 최 권한대행이 경제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들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탄핵소추할 수 있다는 압박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비상계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잘했다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는 민주당이 비상계엄 이후 얻었던 반사이익이 빠지고 있다는 것이며, 민주당의 태도에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을 물갈이하면 될까? 실제 몇 차례 물갈이 수준으로 정치인들을 교체했음에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은 왜일까? 말은 물갈이라고 하면서 정작 수질 개선 없이 물고기만 바꾼 것이 아닌가? 그래서 수질에 맞는 물고기들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수질 개선을, 정치적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 그러했듯이, 대통령을 바꾸고 국회의원을 바꾼다고 대한민국 정치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헌법을 비롯하여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합리화하여 수질 개선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