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러워하는 그래서 분관이라도 유치하고 싶어 안달하는 외국의 미술관은 정부의 적극적인 기부와 기증, 물납제와 문화기부제도와 같은 조세 제도를 활용한 문화진흥정책과 함께 사회적 나눔 즉 기부, 기증 그리고 기업의 사회공헌(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통해 미술관 컬렉션의 질을 향상해 이로 인해 ‘자랑스러운 미술관’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하고 이를 ‘추앙’한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취지 외에, 자국의 문화적 포용성을 자랑하며,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선취해 선진국으로서 국격을 뽐내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세계인들이 K 컬처에 열광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우리 문화유산의 반출과 반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불과 50년 전에 제작된 생활공예품도 해외에 수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문화유산에 관한 한 쇄국주의를 고수하는 나라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문화유산, 미술품에 관한 한 자국산이건 외국 작가의 작품이건 간에 우리나라처럼 수출을 제한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제작 연도가 아닌 수출 대상인 문화유산의 가격을 기준으로 제도를 유연하게 하지만 엄격하게 운용한다는 점이다. 일정 가치 즉 가격이 높다는 것은 희소성과 역사성 그리고 예술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개인의 자산을 최대한 존중해 무조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유물이나 미술품이 해외로 팔려나갈 위험이 닥치면, 정부는 긴급수출정지명령(A Temporary Export Bar)을 내려 우선 일정 기간 수출을 막고, 자국의 구매자가 해당 작품을 구매하거나 수출하지 않고 국가가 소장할 자금을 마련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제도다. 금지명령이 발동되면 자금을 모아 해당 작품을 구입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때 필요한 자금은 대부분 국가나 미술관, 박물관, 기업이나 개인이 나서 십시일반 모금을 한다. 이렇게 국민적 모금 요즘 말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같은 개념의 모금을 통해 구입한 뒤 자국에 남게 된 유물이나 작품은 해당하는 시대 또는 장르, 지역 등을 고려해 해당 미술관이나 기관에 기증 또는 장기대여 등의 형식으로 보관관리 활용된다. 미술관은 중요한 작품을 수집할 수 있어서 좋고, 한편으로는 주요 문화유산의 해외 반출을 막아 문화 선진국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영국과 비슷한 ‘문화유산수출통제’(Cultural Heritage Export Control)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프랑스의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기 전에 특정 절차를 거쳐 '허락'(export license)을 받아야 한다. 특히 일정액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은 수출 전 반드시 검토를 거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 제도는 프랑스의 문화재 보호를 위한 동시에 유럽 연합(EU)의 문화재 보호 정책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런 사전허가 절차를 거쳐야 해외로 문화유산의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이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그리스, 캐나다, 호주, 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운용 중이다.
영국은 2011년 후기 르네상스의 걸작 브뤼겔(Pieter Brueghel the Younger,1564~1636)의 <갈보리로의 행렬>(The Procession to Calvary, 1602)이 국외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독립적인 회원제 자선 단체인 예술기금(Art Fund)과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그리고 일반모금 및 일부 자선 단체의 3개월간 모금 활동을 270만 파운드(약 48억 원)을 모금해 영국 요크셔의 노스텔 수도원에 남았다. 2012년에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1832~83)의 <클라우스 부인의 초상>(Portrait of Mademoiselle Claus, 1868)도 2835만 파운드(약 518억원)에 팔려 해외반출위기에 놓였지만, 일시수출정지조치를 취했다. 미술관은 작품을 구입하려면 세금 면제 등을 통해 약 1/4 가격인 783만 파운드(143억원)가 필요해, 약 8개월간 모금 끝에 800만 파운드를 모금해 옥스퍼드 애시몰린 미술관에 남았다.
2015년 세잔(Cezanne, 1839~ 1906)의 <에스타크와 이프 성의 풍경>(Vue sur l'Estaque et le château d'If,1883~85), 같은 해 렘브란트(Rembrandt,1606~69)의 카테리나 초상(Portrait of Caterina, 1657경), 2018년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1734~97)의 <등불 아래서 공부하는 학교>(An Academy by Lamplight, 1769), 터너(WilliamTurner,1775~1851)의 <에렌브라이트슈타인전망> (Ehrenbreitstein)과 2024년 8월 와토(Jean-Antoine Watteau)의 <예술가의 꿈>(Le Rêve de L'Artiste, 1710)도 긴급수출정지명령에 의해 영국에 구입 우선권이 주어져 미술관에 소장 되었다.
2019년 프랑스 정부는 이탈리아의 치마부에(Cimabue, 1240경~1302경)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The Mocking of Christ, 1280)가 2400만 유로 (약 313억 원)에 낙찰되어 미국으로 반출될 위기에서 해당 작품 수출을 30개월 동안 금지한 후 모금을 시작해 2023년 11월 루브르가 소장했다. 2022년에는 샤르댕(Chardin, 1699~1799)의 <산딸기 바구니>(1761)가 2680만 달러(약 390억 원)에 미국에 팔렸을 때도 긴급수출정지조치 후 루브르가 연간 입장료 20%를 구입자금으로 할당하고 나머지 금액은 모금해 루브르가 소장했다.
이렇게 문화유산의 수출을 막는 제도가 미술관의 소장품수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단순하게 제작연도를 기점으로 50년이 지난 미술품, 공예품, 조각 등의 문화재 수출을 제한하는 고루하고 후진적인 법령을 즉각 고쳐야 한다. 제도로 인해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조삼모사식의 땜질 식으로 '생존작가 작품은 예외'로 하거나 '광복 이후 제작된 작품 중 미술품의 경우 예외'로 해서 제작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해방 이후 제작되었다는 이유로 ‘미술품’은 수출이 가능하고 여타의 공예품 등은 수출이 금지되는 조삼모사식의 '시행령 일부개정'이 아닌 본질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화재 등 국가유산뿐 아니라 미술품을 포함하는 ‘일반동산문화재’의 국외 반출 심사는 국가유산청이 아닌 문화관광체육부 산하에 영국의 '예술작품 및 문화적 관심 대상 수출 검토 위원회'와 같은 전문기구를 두어 국외 반출 즉 수출을 심의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향후 긴급하게 국가가 개인소유의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의 '수출정지'를 명령한 후 국내에서 구입에 필요한 경비를 모으는 데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여기에 동의하고 참여해야 할 소장가와 기꺼이 지갑을 열어 모금에 참여할 이들이 모두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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