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뒤적거리던 중 한 방송사가 2007년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한편을 올렸다. 1991년 일본 버블 붕괴 얘기인데 2025년 한국 상황이 데자뷔를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설명이 맞았다.
2007년이 아니라 지금 봐야 하는 영상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기술 선진국, 우리나라가 넘어서기에는 너무 큰 존재가 일본이었다. 1시간 정도 다큐멘터리 속에는 1991년의 일본이 있었지만 2025년의 한국도 함께 있었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부동산 불패를 외치던 자산가들이 있었고 생업을 놓고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된 국민 가수가 있었다.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 어른부터 아이까지 문전성시를 이루고 갓 사회에 나온 20대 청년이 평생 벌어도 집을 살 수 없으니 빚내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인터뷰한다.
주가는 더 빨리 뛰었다. 상장 전부터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연일 급등했지만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계 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자리가 견고하다는 믿음. 시장에 넘쳐나는 자본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막대한 레버리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득한 시기였다.
다큐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리무진을 타고 긴자의 고급 술집에서 수천만원을 쓰던 자산가는 빈털터리가 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국민 가수는 초라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자기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판다. 상황이야 뻔하지만 당시 일본의 공무원, 금융가, 기업의 인식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 중 누구도 그때가 버블이라는 점을 몰랐다고 말한다.
부동산 가격이 연일 급등하니 자산가들의 소비가 늘어 기업들의 실적이 좋았다. 멀쩡해도 새 상품이 나오면 버리고 사던 때다. 기업 실적이 좋으니 주식도 오른다. 경제 지표가 좋으니 은행들도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해 대출을 끝없이 늘렸다.
그 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해 은행이 망하고 기업이 스러져간다. 자산가격이 내려가자 이제 집 살 수 있겠다며 환호했던 사람들은 실직했다. 외식 대신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이들이 늘어나자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까지 빈곤이 늘었다. 2025년 한국 데자뷔라는 제목은 흔한 유튜브 낚시는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뒤 2000년 무렵 형성된 닷컴 버블이 터지며 수많은 회사들이 도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주식으로 한 재산 모았던 사람들 대다수가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시장에 토해내야 했다. 코로나19로 지난 2020년부터 형성된 ‘비대면 버블’ 역시 2년 만에 터지고 말았다.
오죽하면 정부가 우리 증시를 밸류업 하겠다고 직접 나섰을까. 일본의 거품 경제, 미국발 닷컴 버블, 범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버블 등의 추이를 살펴보면 버블이 형성되는 기간도 5~6년 걸렸고, 다음 버블이 만들어지는 기간도 10~20여 년 주기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모두 2~3년으로 짧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 증시가 바닥이라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빚투도 다시 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칭찬했던 조선, 방산업에 대거 몰렸다. 지난해 발생했던 버블은 반년 남짓 진행되다 하반기 들어 꺼지기 시작했다. 이제 형성되는 버블은 6개월이 아닌 3개월이 될 수도 있다.
계엄 사태 이후 우리 증시가 바닥권까지 내려오긴 했다. 하지만 파는 사람이 살 사람보다 많으면 가격이 내린다. 살 사람이 줄어들수록 더 가파르게 내린다. 아직 바닥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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