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의 핵심 안건인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오는 1월 23일로 예정된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통과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17일 고려아연 임시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한 후, 집중투표제가 주주 가치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날 이사회 이사 수를 19인 이하로 제한하자는 최 회장 측 안건에도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집중투표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이사회 진입·장악 시도에 맞서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제도다. 의결권이 적은 소액주주도 자신이 추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핵심 내용인데,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집중시킬 수 있어 MBK·영풍이 과반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이사회를 장악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국민연금은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을 제외한 고려아연 주주들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번 임시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정관변경 안건은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특별결의이면서 동시에 주주별로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룰' 적용 대상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에 우호적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로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집중투표제 관련 안건에는 모두 찬성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국내외 다른 고려아연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선 최대 2~3%의 고려아연 기관투자자 지분이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을 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MBK·영풍 측은 이번 국민연금의 판단에 소수주주 보호의 취지를 왜곡하고 최 회장의 자리 보전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MBK·영풍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 보호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몰각되고 최윤범 회장의 자리 보전 연장 수단으로만 악용될 것"이라며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지배권 분쟁이 장기화될 것이고 이는 회사와 주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MBK·영풍 측은 다음주 초에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 법원의 가처분에 기대를 걸 전망이다. MBK·영풍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 안건 상정을 금지해달라고 지난달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이날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으며, 늦어도 21일까지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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