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매출 규모를 축소하거나 매출원가를 높이는 꼼수로 법인세를 적게 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공정 과세와 규제 적용이 더 어려워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기업에 '차별적' 세금을 매기는 국가의 기업과 시민에 미국 내 세율을 두 배로 높이겠다고 경고하면서다.
우리 정부가 애플과 구글에 더 많은 세금을 걷으면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는 점에서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미국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세 도입 등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날인 20일 공개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각서에 "재무장관은 상무장관,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협의해 미국법전(USC) 제26권 제891조에 따라 외국이 미국 시민이나 기업에 차별적 또는 역외적 세금을 부과하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 각서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 방지를 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최저한세' 합의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고, 미국 기업에 불균형하게 과세하는 국가에 대한 '보복 조치' 검토를 지시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일정 매출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 본사 소재 국가에서 15% 미만의 세금을 내는 경우 다른 나라에서 15%에 미달한 세율만큼 과세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세금 전쟁'은 디지털세 부과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이 우선 타깃이지만 빅테크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법안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대표로 발의한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국내 매출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구글의 2023년 국내 매출액은 12조13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글코리아가 감사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매출액은 3653억원, 영업이익 234억원에 불과했다. 그결과 구글코리아의 같은 해 법인세 납부액은 169억원으로 매출액 추정치에 따른 법인세인 5180억원에 턱없이 못 미쳤다.
국제사회의 디지털세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자국의 빅테크 기업을 정조준해야 하는 미국의 반대로 수년간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송기호 국제통상전문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국제사회의 디지털세 부과 논의에 어떤 제동을 걸어보자는 데 있을 것"이라며 "미국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해 낮은 수준이라도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하는 계기로 삼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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