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끊고 은둔 벗어나 下] 생활고로 배곪던 대학원생..나눔냉장고로 '나를 돌보는 법' 배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백소희 기자
입력 2025-01-29 09: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광역청년센터에 있는 나눔 냉장고 사진백소희 기자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광역청년센터에 있는 나눔 냉장고. [사진=백소희 기자]


"나눔냉장고는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줬다"

권모씨는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 중 아버지가 회사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 아픈 것도 잠시, 수입이 뚝 끊기면서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다. 나눔 냉장고를 찾게 된 건 배고픔에 못 이겨서다.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진하던 중 서울시와 CJ제일제당의 나눔 냉장고를 알게 됐다. 식생활 취약 청년 계층에게 햇반, 냉동식품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신청 후 며칠 만에 식품 꾸러미가 권씨 앞으로 배달됐다. 권씨는 "꾸러미를 열었을 때, 단순히 음식 상자를 모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며 "평소에 신경쓰지 않았던 환경 문제에 대한 작은 정보들이 포함돼 있어 놀랐다"고 했다.  

단순히 공짜 햇반과 간편 식품을 주는 사업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첫 발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다. 햇반 용기를 세척해서 서울청년센터에 가져오면, 냉동·냉장 식품 교환해주고 전문 요리 강사의 건강한 식습관 들이기 프로그램으로 연계한다.

또다른 참여자 김모씨는 이같은 취지에 공감해 햇밥 용기 100개를 모아 가져간 적도 있다. 김씨는 "나눔 냉장고는 생각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데에 있어 등을 밀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권씨는 "청년센터를 통해 또래 청년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연대감을 통해 앞으로의 어려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던 나에게 스스로를 돌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다시금 갖게 해줬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햇반 반납이라는 작은 실천이 또래들과의 사회적 연결고리가 됐다고 입모았다. 지난해 식품 꾸러미를 받은 청년 1만 2386명 중 9600여명이 햇반 용기 수거에 참여, 또 1100여명은 '건강한 식습관 교육'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연계됐다.

실제 나눔 냉장고 참여 청년 중 1679명이 '행복·희망 빈곤' 상태라고 자가진단했다. 독립 8년차 박모씨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나눔냉장고를 신청했다. 박씨는 "배달음식 빈도는 늘어가고 규칙적으로 챙겨먹지 않으면서 내 몸 하나 챙기기 힘들었다"며 "이제는 내 소비와 행동으로 인해 일어날 결과를 생각하고 나아가 공동체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눔 냉장고를 운영하는 서울청년센터는 올해 7개소가 늘어 총 13개가 된다. 천지원 서울광역청년센터 지역지원팀 팀장은 "하루 한 끼 먹는 청년도 많은데 규칙적이지 않은 식사가 정서적으로 연결된다고 본다"며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들은 별의미 없고 자신이 선순환 구조의 일부로 가치 소비에 참여하고 있다는 효능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