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방법원 인근에서 불법 시위를 벌이던 지지자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했다. 마치 사전에 계획된 듯한 집단 광기를 보이며 경찰과 민간인, 기자를 폭행하고 법원을 습격·점거하는 등 무법천지를 보여줬다.
이들은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색출하려 사무실에 무단 진입했고, 기름에 불을 붙여 건물 곳곳에서 방화를 시도했다. 법원 내 전산 서버를 파괴하고 물을 뿌려 고장 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케 하기 충분했다.
이들의 절반가량이 20·30대 남성들로 밝혀지면서 화살은 ‘2030 남성’에게 향했다. 2030 여성들의 참여로 이목을 끌었던 탄핵 찬성 집회와 달리 2030 남성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한 축으로 등장하자 언론들은 앞다퉈 2030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측은 체포영장 집행을 전후해 불법을 강조하면서 “경찰을 체포할 수 있다” “차량을 막아 달라”고 메시지를 냈다. 윤 대통령도 체포 당일 공개 영상에서 ‘청년’을 콕 집어 얘기하는 등 지지자 메시지마다 청년을 강조했다.
극우 유튜브도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음모론을 확산시키며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겼다. ‘이재명 포비아’라든가, “서울서부지법에 빨갱이가 있다” “부정선거가 실제 있다” “떼로 덤비면 경찰이 못 막는다” 같은 극단적인 메시지들이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를 거치지 않은 채 마구 증폭됐고, 선동의 언어로 포장됐다.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더욱 접하게 되는 SNS와 유튜브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막고 확증편향 속에서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일상화시킨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들을 불신하고 모든 정보를 극우 유튜브에 의존했고, 자신들이 준거집단의 요구와 감정을 대변한다는 확신 속에 과격한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왜곡된 정의감과 결합된 불신은 서울서부지법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히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적 극단주의의 산물이었다.
이번 폭동은 한국 사회에 계속된 극단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미래 세대인 2030이 나서면서 보다 두드러졌을 뿐이며 세대·계층·지역 간 대립 구도는 이미 뿌리 깊다. 분화된 사회는 서로 대립 구도를 이용만 할 뿐 대화하는 방법 자체를 잊은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포용보다는 엄벌과 단절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동 행위를 훈방한다거나 처벌 수위를 섣불리 낮추면 오히려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경고다.
극단주의와 단절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양극화 흐름을 멈출 수 있는 첫걸음이다.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극단적 폭력이 배제될 때 비로소 열릴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보수적 입장을 가질 수도, 진보적 의견을 펼칠 수도, 탄핵을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는 행동에는 모두가 공통된 선을 그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번 사태가 구속영장 발부에 불복해 이뤄졌던 것을 비춰볼 때 향후 탄핵심판 결과가 나와도 유사한 혹은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 미국 의회 습격 사태가 보여주듯 우리 역시 이대로라면 법치주의 자체가 부정당하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우리에게 ’극단과의 이별’을 선택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