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크라잉넛 한경록이 생일을 모두의 축제로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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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5-02-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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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생일'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누군가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록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자신의 '생일'을 축제로 만들었다. 지난 2007년 홍대의 한 치킨집에서 동료들과 생일 파티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인디 밴드들의 음악 축제로까지 자리잡게 됐다. '경록절'의 주인공, 크라잉넷 한경록과 '의미 있게' 노는 방법을 나눴다.
 
경록절 사진 캡틴락컴퍼니
경록절 [사진= 캡틴락컴퍼니]

성실하게 열심히 놀다 보니까, 성공했다. 한경록에게 논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 삶이 뻔해지지 않도록 삶을 변주하는 것이다. 저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 그래서 싫증을 내지 않기 위해 항상 같은 사물 혹은 관념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실제로 가구 배치도 자주 바꾸는 편이며, 술자리도 자주 이동하며 마십니다. 환경이 바뀌면 그만큼 뇌도 적응하느라 신선해지고,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술,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더라도 다양한 뉘앙스가 섞여서 더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보통 술도 밤에 마시는 것이니 낮술도 이 같은 변주에 속한다. 실제로 길바닥에 쓰러져서 세상을 바라보면 개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말하다 보니 술 마시는 것이 노는 것 같다(하하).
 
각자 노는 법이 다른데 한경록이 노는 방법이 궁금하다. 놀면서 가장 크게 느끼고 배운 건 뭔가
- 그냥 한 가지만 하고 노는 것은 재미없다. 그냥 술만 마시면 그냥 유흥으로 끝난다. 술과 문화가 만나고 그 만남이 예술이 되어야 진짜 놀이가 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가 만나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모두가 웃으며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놀이이며,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문화들을 칵테일처럼 쉐이킹하다 보면 예술의 다양성은 어디로 튈지 모르게 다양해지며 감동은 더욱 깊어진다. 그 새로움은 나의 얄팍한 관념을 깨부수어 주고, 성장하게 한다.
 
처음 어쩌다가 음악을 시작했고 크라잉넛을 결성하게 됐나
-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고등학교 때 락밴드를 하면 여자애들한테 인기를 많이 얻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하하). 물론 음악도 좋아했지만, 여자애들한테 인기를 끌기 위한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게 그 얘기인 것 같다. 절대로 유치한 마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음악과 동요가 아닌 이상 대중음악의 시작은 이성에게 관심을 끌기 위함이 아닐까. 크라잉넛은 동네 친구들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록밴드는 최고의 놀이 수단이었다. 처음 기타를 잡는 순간 마음은 이미 록스타였다.
한경록 사진 캡틴락컴퍼니
한경록 [사진= 캡틴락컴퍼니]

음악을 시작하고 크라잉넛을 결성했을 때 가졌던 목표를 얼마나 이뤘나
- 크라잉넛의 장점은 너무 먼 미래에 대한 목표나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막연히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니, 목표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술 처마시고 로큰롤 하는 것이 즐거웠다. "목표를 이루었나?"라는 질문보다 "그날의 목표를 이루고 있나?"라는 질문이 저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은 친구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즐겁고 신이 난다. 그거면 됐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여서 결성해서 30년 가까이 됐는데 한경록에게 팀원 그리고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 5단 분리 변신 합체 로봇 같다. 각자 삶을 잘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합쳐졌을 땐 뭔가 더 만화 같은 일들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빌런들을 해치우기 위해선 혼자 힘으로는 힘들지 않나. 대전물의 하이라이트처럼 최강 빌런을 만났을 때는 변신 합체 로봇처럼 뭉쳐서 적장을 해치워야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꼭 영화 '스탠 바이 미'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의 한경록, 크라잉넛이 있기까지 중요하고 소중했던 순간들이 있나
- 1995년, 크라잉넛이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DRUG)'이라는 곳에서 오디션을 본 순간이다. 동네 애송이들이 처음으로 야생에 발을 내디딘 때였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한경록의 먹고사니즘(뭘 하면서 먹고 사는지)은 뭔가. 일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을 때 한경록을 붙잡아준 건 뭔가
- 저는 전업 로커(rocker)이다. 음악으로만 먹고 살아간다. 물론 부지런히 노력한다. 그래서 나중에 학부모 직업 소개란에 록 가수 또는 인디 뮤지션이라고 쓸 것이다.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저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인다. 일단 움직인다. 일단 일을 벌이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일을 마무리 지을 체력을 만들어 둔다. 저를 지탱하는 것은 평소 운동으로 쌓아온 체력이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마신다(하하).
 
휴대전화에 전화번호가 2000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뭔가
- 거리 유지다. 탱고가 아름다운 이유는 너무 가까워져서 발을 밟아버리거나 손을 놓쳐 상대방을 내동댕이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거리감. 인간관계는 탱고처럼.
 
경록절은 함께 하는 사람부터 홍대 상인들까지 기다리는 홍대 3대 명절이다. 당사자는 얼마나 기다려지겠나. 한경록에게 생일, 경록절, 그리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 저에게 생일은 2월 11일, 겨울과 봄 사이 꽃이 필 듯 말 듯 한 계절. 경록절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취향의 디즈니랜드 같은 무형의 놀이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좋은 인디 문화를 알리고 대중문화가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순환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고 싶다. 산다는 건 게임 같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제가 걸어온 궤적들이, 나중에 되돌아보면 나름 아름다운 그림이었으면 한다.
 
1세대 인디밴드로서 힘든 점은 뭔가. 그리고 후배 인디밴드들에 가장 전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 1세대로서 딱히 힘든 점이 있다기보단 인디 시장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 점이 인디뮤지션들에게 어려운 점일 것이다. 조언이라고 한다면, 음악 시작할 때, 그냥 음악 그 자체와 활동을 즐겼으면 좋겠다. 입시도 물론 중요하지만, 음악이 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시가 아니더라도 미래에 대한 너무 많은 고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일 좋을 시기, 눈부신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 시작해서 아직 인기가 없더라도 공연 자체를 즐겨보자. 시작하는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고, 기획해서 공연을 만들어가고, 소중한 팬들을 하나하나 늘려갈 수 있다. 숫자가 다가 아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재미를 간직하면서 가는 것이다.
 
크라잉넛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짜릿하고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 2집 발매 공연했을 때, 아직 우리도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는데, 첫 곡 ‘서커스 매직 유랑단’ 시작부터 관객들이 떼창 했을 때.
 
한경록에게 록은 어떤 의미인가
- 가장 원초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 때로는 유치하고 반항적이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순수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경록의 인생을 록으로 만든다면 첫 가사를 뭘로 하고 싶나
- 돈키호테 같았었지.
 
크라잉넛 한경록, 창작자로서의 한경록, 경록절 기획자로서 한경록, 사람으로서의 한경록은 어떤 의미인가
- 크라잉넛은 내 존재의 일부분, 창작자로서는 신이 어지럽게 흩뜨려 놓은 퍼즐 맞추기 놀이하는 경록, 창작이 건축이라면, 기획은 토목 규모의 거대한 창작 같다. 경록절 기획자로서 예술을 새롭게 재배치하여 르네상스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 사람으로서 한경록은 술 잘 사주는 동네 형이다.
 
직업병이 있나. 직업병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떤 영향을 주나
-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으나 자투리 시간을 잘 쪼개 쓴다. 일상생활의 조각 모음을 잘한다. 그래서 하루 2모작 3모작이 가능하다. 술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다.
 
가수 한경록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방법이 있나
- 좋아하는 것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게 한다. 때로는 밀어붙이고 때로는 쉬어가며 완급조절을 잘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다.
 
크라잉넛 팀으로서 꿈, 한경록 개인의 꿈은 뭔가
- 건강하게 오랫동안 친구들과 노래 만들고 공연하는 것이 제 꿈이다.
 
크라잉넛을 열심히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뭔가
-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다.
 
캡틴 한경록의 캡틴은 누구인가. 그 이유와 한경록은 어떤 캡틴이 되고 싶나
- 누구를 추앙하지는 않지만, 찰리 채플린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에게 잔잔한 웃음과 위로를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신나고 의미 있게 놀면서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 재미와 감동을 직접 찾아다녔으면 한다. 보이는 것들 말고 직접 여러분의 취향을 찾고 만난다면 분명 지금보다 인생은 더 재미있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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