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車부품 아이러니]"R&D 투자비가 없어요"...잠식당하는 미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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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권가림 기자
입력 2025-02-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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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연매출 916억 유로(약 138조4500억원).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기업 독일 보쉬그룹의 경쟁력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나온다. 전체 임직원 41만7900명 중 10%가 모빌리티 사업분야 R&D 인력이다. 미래 자동차로 각광 받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기술 선점을 위해 매년 전체 매출의 8~9%를 R&D에 쏟아붓고 있다.
 
# 세계 2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일본 덴소는 도요타자동차의 자회사다. 디젤 엔진의 오염 배출을 혁신적으로 감축한 커먼레일 연료 분사기술을 대중화해 관련 시장에서 보쉬와 1·2위를 다투고 있다. 덴소는 최근 전기차용 첨단 부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연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차량용 AI(인공지능), SDV, 자율주행 등 기술 확보를 위해서다. 실제 덴소는 감속기, 배터리 제어, 자율주행 등 전기차와 로봇 관련 부품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곧 도래할 전기차 시대에도 글로벌 부품사들의 패권이 지속된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들 뒤에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부품사들이 있다. 자동차 한 대에는 5000~2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런 부품의 품질과 기술 경쟁력이 완성차 업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 세계적인 완성차·부품업체들이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을 R&D에 투입하는 것도 품질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수년간 0~5%대 영업이익률로 고전하며 R&D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국내 상황과 대조적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사들은 지난해 영업실적 개선에도 R&D 투자에는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이 공개된 부품업계 상위 10곳 가운데 일진하이솔루스(-12.45%→-13.73%)와 명신산업(11.97→10.45%) 등 2곳은 영업이익률이 둔화했다. 다만 실적이 호전된 나머지 8곳도 R&D 투자 증가율이 영업이익 증가분에 못 미쳤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부품사 중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5%를 넘은 곳은 HL만도가 유일했다. HL만도의 지난해 3분기 R&D 비용은 3610억원으로 매출액의 5.62% 수준이었다. 전년 대비 1.23% 증가한 수치다. HL만도의 R&D 투자 비중은 2012~2013년 3%대에서 2014년 4.5%로 상승한 뒤 2015년부터 5%를 넘어섰다.
 
HL만도와 경쟁하는 현대모비스는 R&D 비중이 3.03%로 5%를 밑돌았다. 한온시스템은 4.5%, 금호타이어는 3.29%, 한국타이어는 2.9%로 집계됐다.

현대차그룹과 계열 부품사를 제외한 중견·중소 부품사의 R&D 투자는 더 열악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및 트레일러 기업의 총 투자에서 경상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기업이 2020년 74.8%에서 2023년 79.6%로 증가한 반면 중견기업은 19.4%에서 15.7%로, 중소기업은 5.8%에서 4.8%로 각각 감소했다.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10%(6838억 달러 중 708억 달러)와 제조업 일자리의 11%를 책임지는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품사가 완성차 업체 물량과 내수 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첨단·핵심 기술 개발은 언감생심이다. 

현재 국내 1차 부품사는 물론 2~4차 협력사까지 더하면 현대차그룹 의존도는 80%를 웃돈다. 현대차그룹은 부품사들의 경쟁력을 활용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제품을 빠르고 값싸게 모방하며 성장했다. 반면 수직 계열화 덫에 갇힌 중소 부품업체는 자생력을 잃어 가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전속 거래와 이익 쥐어짜기 관행을 타개하지 않는 한 국내 부품사의 R&D 경쟁력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부품사들은 오랫동안 대기업에 의존하며 시장을 키우지도, 자생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했다"면서 "현대차, 기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줄거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외 리스크가 커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생태계 복원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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