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천명했지만 북한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 요구에 핵무력을 더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 의지를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또 북핵 문제에 한·미·일이 공조해 대응해야 할 상황에서 탄핵 정국을 겪는 우리는 정상외교 역할이 부재한 상태다. 이에 아주경제는 정계, 학계 등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과 전망을 청취하는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지난 28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회담에서 '한국 패싱'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한 카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우크라이나의 설움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동맹에게 요구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가 강해져야 합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한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지난 28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국제 외교안보 환경에 관한 대책으로 자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2월 말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당초 예정됐던 광물협정에 서명하지 못한 채 ‘노딜(no deal)’이라는 파국으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설전을 주고받는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북한 비핵화라는 고차 방정식을 놓고 트럼프와 협상을 해야 하는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재래식 무기로는 핵무기를 막아내지 못한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어떤 국가가 핵을 만들면 연쇄적으로 불안감 때문에 핵을 만들게 된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이 그랬다. 북한은 2006년에 핵실험을 했다. 우리는 3자 회담, 6자 회담, 미북 정상회담 등 다자 외교 협상안에만 매달렸다. 수사적인 측면이 강했고, 실질적인 성과는 많지 않았다.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로는 핵무기를 방어할 수 없다는 ‘핵의 비대칭성(asymmetric)’은 비핵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심화시켰다.”
-공식과 비공식 핵보유국의 차이점은 뭔가.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를 무시하려는 국제사회에 맞서 지난해 9월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핵보유국으로서 갖는 국제적 위상과 프리미엄을 누리기 위한 공개 압박전략이었다. 공식과 비공식 핵보유국은 비핵화 협상의 기준이 다르다. 공식 보유국들은 상호 간에 핵 군축협상을 하지만 비공식 핵보유국과는 핵을 완전히 없애는 비핵화 협상이 우선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물 건너간다. 오직 핵무기 보유를 동결하거나 일부 축소하는 핵 군축만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 정상회담은 언제쯤 열릴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올가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북한과 편지 27통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도 편지를 통해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다.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대사를 북한·베네수엘라에 임명하는 등 평양과의 협상 준비에 나서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올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스몰딜(small deal)’을 1단계 비핵화로 포장하면서 평양과 핵 군축협상에 나설 것이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딜로 끝난 부분은 비핵화만으로도 협상이 성공적이라고 포장할 것이다. 영변 핵의 비핵화만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에 콘도를 건설해주는 등 보상안은 트럼프의 유인책이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북한의 비핵화는 한·미·일이 주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은 많은 선물을 가져갔다. 트럼프 2기 첫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총리는 대미 투자를 1조 달러로 늘리고, 방위비는 GDP 대비 1.6%에서 3%로 늘렸다. 일본의 목적 중 하나는 관세라는 단어를 안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2024년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컸다. 민과 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향후 일본은 핵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 것으로 보는가.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서, 핵 제조와 보유 및 반입 금지라는 비핵 3원칙이 확고하다. 하지만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일본판 나토’를 주장하며 3원칙 중 핵 반입 금지의 수정을 주장해 왔다. 정치적 기반이 미흡해 당장 밀어붙이긴 쉽지 않지만, 미·북 정상회담에서 부분 비핵화가 합의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미·일 동맹으로 안보를 지키지만 ‘절대 늦지 않은 외교’를 주창하는 일본도 마침내 핵보유를 통한 ‘핵균형(nuclear parity)’ 전략을 모색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일본은 이미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20% 이하는 물론 그 이상도 미국이 동의하면 우라늄 농축이 가능하다. 핵연료 사용 후 재처리가 가능해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미원자력협정에서 모두 불가(不可)다. 최근 경주 방폐장 2단계 처분시설이 준공돼 시운전에 들어갔지만,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결과 이미 47톤(t)의 플루토늄을 비축, 6개월이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잠재력 기반을 구축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핵 잠재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굴욕'을 생생히 목격했다. '코리아 패싱'을 막기 위한 방안은.
“한국의 정치 안정이 필수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한국에 온다면, 그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군함 건조·유지보수(MRO) 협력 등의 카드를 내세워, 비핵화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핵 잠재력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핵 도미노 현상’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등을 근거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재래식 무기를 보유했지만, 핵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국제 정치에서 패싱을 안 당하려면 결국 힘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