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천명했지만, 북한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요구에 핵무력을 더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또 북핵 문제에 한·미·일이 공조해 대응해야 할 상황에서 탄핵 정국을 겪는 우리는 정상외교의 역할이 부재한 상태다. 이에 아주경제는 정계, 학계 등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과 전망을 청취하는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국통일협회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며 "북한에서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가 나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가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국통일협회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발언했다. 이에 기대감이 커져 못 만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특히 북한 핵 문제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일본이 참여하는 공조 방식은 "자살골"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내심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며 "남북을 계속 불안한 상태로 놔두고, 남과 북이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 한·미·일 공조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 일문일답한 내용.
- 트럼프 행정부 공식 외교문서에 '비핵화 원칙'을 명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말하는 핵보유국의 정식 명칭은 '뉴클리어 웨폰 스테이트(Nuclear Weapon State)'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뉴클리어 파워'라면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발언했다. 김 위원장은 그때 아마 상당히 큰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NPT에 서명하지 않은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수준으로 자신들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을 못 만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공짜로는 안 되고, 그동안 미국이 유엔을 통해 북한에 가했던 제재를 풀어주는 조건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북한에서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가 나오면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본다."
-한·미·일 주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활동 또는 압박은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우선 정상급에서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핵문제는 보텀업(bottom-up)으로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이 끼어들어 한·미·일 3각 공조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고 한국이 협의하는 것은 자살골이다. 일본은 내심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다.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을 '노딜'로 끝나게 만든 인물이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일본 총리다. 일본은 끊임없는 로비를 통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베 총리 시절 인도·태평양 개념이라는 것을 미국에 가르쳐줬더니 이것이 '인도·태평양 전략'이 됐고, 지금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아주 커다란 정책적 방향이 됐다. 그 밑에는 '팍스 자포니카(Pax Japonica)' 또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재구축의 꿈이 깔려 있다. 일본은 문제를 풀기 위해 협조하는 것처럼 하고, 뒤로는 언제든지 허방(땅바닥이 움푹 패어서 다니다가 빠지기 쉬운 곳)을 파놓아 북한이든, 미국이든 빠지도록 장난을 칠 수 있는 나라다. 남북을 계속 불안한 상태로 놔두고, 한국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는 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미·일 공조는 한국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일본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외교를 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힘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국통일협회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며 "북한에서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가 나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비핵화 협상을 위해 북한을 대화에 끌어들일 방안은 뭐가 있나.
"북한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심이냐',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회담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냐'를 분명히 하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되 일단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더 이상 확산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핵군축 회담적 성격의 실무 협상을 추진하기 위한 정상 간 만남을 먼저 하자고 미국이 나온다면 북한은 북·미 회담에 나올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에 대해 시기와 양상을 어떻게 예측하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정치 분야에서 북핵 문제로 옮겨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의 인정과 비핵화 사이의 단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자신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느 단계까지 단계별로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없으면 회담하지 않겠다면서 버틸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 정치 장악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말하자면 점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작년부터 시작한 '지방발전 20×10 정책'으로 1970년대 박정희식 장기 집권의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내부에서 필요한 것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그것을 눈앞에서 보장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가 러시아로부터 현물로 들어올 수 있다면 미국을 굳이 급하게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
-국내 일각에서 계속 거론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면 좋지만, 그것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지금도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 핵물리학자들이 죽을 정도로 노력해 핵무기를 만들도록 미국이 놔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 주제에 핵무기를 만들면 핵단추는 누구한테 줄 것인가. 그때도 미국에 물어봐야 한다. 그러니까 전시작전통제권이 반환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장론은 사실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비현실적인 얘기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받고 있는 국제 제재를 받으면서 핵무장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자체 핵무장론은 콜라와 같다. 국민들이 듣기에는 시원하지만, 몸에는 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