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종 칼럼리스트]
대한민국 안전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경북 의성, 경남 산청을 중심으로 발생한 최악의 산불과 서울 강동구 싱크홀(땅 꺼짐) 사고는 국가 재난관리 체계의 치명적인 허점을 여실히 노정(露呈) 시키며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무안 항공기 사고 역시 항공 안전관리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일찍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기간 안전 인프라를 게을리 한 대가이자 관리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보복이다.
이번 산불은 강풍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번지면서 역대급 피해를 불러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 오후 8시 기준 경북에서 사망자가 1명 더 늘어나면서 전체 사망자 수는 28명으로 집계됐다. 중상 8명, 경상 24명 등을 포함한 전체 인명피해 규모는 60명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에서만 사망자가 24명 발생하면서 가장 많았다. 경북에서는 중상 3명·경상 18명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남은 사망 4명·중상 5명·경상 4명 등 13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울산은 경상 2명이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중·대형 산불 피해가 난 곳은 11곳에 달한다. 이중 전날 산불이 시작된 무주를 포함해 7곳에서 진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 사태로 피해 영향을 받은 산림 구역은 3만 8,665㏊(축구장 5만 4,153개 │ 서울 면적 6만 520㏊의 63.88%)로 집계됐다. 산불로 인해 집을 떠나 인근으로 대피한 주민은 이날 오후 7시 기준 3만 7,829명이다. 이 중 8,536명은 아직 집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시설물 피해도 늘어 주택, 공장, 창고, 사찰, 문화재 등 2,639곳이 피해를 봤다. 특히, 화마가 덮친 의성군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불에 탈 위기에 놓였다. 게다가 의성에서는 지난 3월 26일 산불 진화에 나섰던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터졌다. 강한 남서풍이 불면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지역으로 북상할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강풍과 건조한 날씨 등 기후변화가 피해를 키웠지만, 예산 부족에 따른 산불 진화 장비와 인력 부족, 예방 감시 초소 미비 등이 초동 진압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싱크홀 사고 역시 노후화된 도시기반시설과 철도·도로 지하공사 안전관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서 폭 20m, 깊이 30m에 달하는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길을 지나던 오토바이가 추락하면서 운전자가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 20~30년 된 낡은 상·하수도관이 파열되면서 발생한 누수가 땅 꺼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 때문에 차일피일 정비를 미룬 것이 화를 키운 셈이다. 전국의 싱크홀 사고는 이미 이틀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일상사가 됐다. 최근 10년간 서울에서만 모두 216건의 싱크홀이 발생했고 지난해만 해도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대교 방면 도로에서 폭 6m, 깊이 2.5m 크기의 싱크홀이 발생했고 지하철 종로5가역, 언주역 인근 등에서 잇달아 싱크홀이 발생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무엇보다 노후 하수관과 대규모 지하 개발 사업이 겹치면서 서울이 싱크홀 ‘지뢰밭’이 되고 있다. 특히 56%에 달하는 노후 하수관이 싱크홀의 주범으로 꼽힌다. 지난 3월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하수관 1만 838㎞ 중 6,017㎞(55.6%)가 설치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하수관이다. 50년이 넘은 ‘초고령 하수관’도 무려 3,248㎞로 전체의 30.0%나 된다. 노후 하수관의 틈과 구멍 사이로 흐르는 물이 ‘공동(空洞 │ 빈 공간)’을 만들고 이는 싱크홀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의 땅 꺼짐 사고는 무분별한 지하 개발이 부른 인재가 아닐 수 없다. 각종 지하 도로와 지하철 건설로 인근 지층과 지하의 물흐름이 교란돼 주로 발생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상·하수도관 노후화와 누수로 인한 지반침하도 간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지하 시설물이 어디에 얼마나 묻혀 있고, 지하 공사가 물흐름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파악하는 종합적인 ‘지하 지도’를 시급히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산불 참사와 싱크홀 사고는 국가의 재난 대응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사고로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즉각적인 피해 복구와 함께 근본적인 재난 대응과 안전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산불 등 재난 대응을 위한 장비와 인프라 확충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늦추거나 소홀히 한다면, 결국에 이르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여(與)·야(野)는 중단된 ‘여(與)·야(野)·정(政) 국정협의회’ 재개에 공감하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불로 타버린 집·과수원·축사 등 생활기반시설을 복구하고 이재민 지원, 방재 인력·체계와 낙후한 소방헬기나 진화 장비 개선까지 뭉칫돈 들어갈 곳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산불 피해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정쟁을 중단하고 피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신속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을 통해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조속히 치유하고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길 간절히 바란다. 매년 되풀이 반복되는 봄철 대형산불 발생 악순환의 고리를 근원적으로 끊어야만 한다. 산불은 어느 한 시점이나 어느 한 기관이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적 차원의 범국민적 산불 예방이 첩경이다. ‘산소기지(山消氣地 │ 山림청·消방청·氣상청·地자체) 공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봄철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 조기 진화를 어렵게 한 요인이었지만,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책임이 막중하다.
점점 늘어나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봄철 동시다발 대형산불이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산불이 정리되는 대로 정부와 지자체는 총체적인 반성과 재점검을 통해 ‘산소기지(山消氣地)’ 중심으로 산불 대응체계를 완전히 다시 짜길 바란다. 조속히 전문 진압인력과 첨단 진압 장비를 확충하고, 간벌(間伐)과 임도(林道) 확충 등을 통해 신속한 산불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5,455건에 이른다. 연평균 산불 발생 건수 546건 가운데 56%인 303건이 3~5월에 집중될 정도로 봄철 산불이 잦다. 산불 발화 원인은 입산자 실화(31%), 쓰레기 소각(13%), 논·밭두렁 소각(11%) 순이었다. 사람의 부주의나 실수로 발생한 화재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소한 부주의가 산불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입산자와 산지 주민들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홍보·관리 활동을 대폭 강화해야만 한다.
특히 4월이 되면 강원 영동지역 강풍은 ‘양간지풍(襄杆之風)’이나 ‘양강지풍(襄江之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간성,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으로 고온 건조한 데다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푄 현상(Foehn wind)’의 일종으로, 영동지역에 동풍이 불 때 습기가 많은 동해안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수증기의 응결로 영동지방에 비가 내린 후 영서지방에 고온 건조한 바람을 일으키는 ‘높새바람’과는 방향이 반대로 봄철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기압 배치 상황에서 서풍의 기류가 형성될 때 영서지방의 차가운 공기층이 태백산맥과 상층의 역전층(Inversion layer) 사이에서 압축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태백산맥의 급경사면을 타고 영동지방으로 불어 내려가면서 순간최대풍속은 35.6m/s까지 관측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강한 바람으로 변하여 영동지역 봄철 대형산불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사전에 미리미리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할 것이다.
숭실사이버대 박재성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화재 발생으로 피난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대규모 축제나 행사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군집 밀도가 높아지게 되는데 보통 1㎡에 약 4~5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찼을 때 군집의 흐름이 끊기면서 사람들의 신체에 압박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고, 1㎡에 8~9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차면 여성들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며, 1㎡에 약 12명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을 때 압사나 실신에 대한 사고가 발생한다. 따라서 군중의 흐름에 의해서 흘러가게 되고 앞에서 한 사람이 넘어져 압사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계속 사람들이 밀려와서 압사가 가중되고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 된다. 더구나 좁은 도로에 경사가 져 한 사람을 50kg 정도로 보고 100명이 넘어지면 5,000㎏ 정도의 큰 무게가 되는데, 이 가운데 한 사람이 무너지게 되면 도미노처럼 계속 무너지게 되 짓눌림은 가중된다. 더구나 좁은 내리막 골목이라 심폐소생을 펼칠 최소한의 공간 확보도 어려웠다. 이렇듯 이번 참사는 ‘불안전한 환경’과 ‘불안전한 행동’이 ‘역(逆)시너지’로 작용했다. 게다가 워낙 사람이 많았던 탓에 출동한 소방관들도 구조 지연을 감수해야만 했고, 현장의 많은 시민이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으나 유래없는 최악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골든 타임’을 놓친 대가치고는 너무도 참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뒷골목은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큰 안전 취약지다. 평소에도 좁은 골목이 많은 데다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늘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었다. 사고 전날인 10월 28일부터 젊은 층이 대거 몰려 사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당국의 치안 활동은 강화했지만, ‘노 마스크’로 3년 만에 재개되는 ‘핼러윈’ 행사였다면 수만 명이 몰릴 것을 미리미리 예상하고 그에 상응하는 철저하고 완벽한 대비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이처럼 대규모 인파를 대비한 안전관리 대책은 미흡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야외, 그것도 심야 행사에 당연히 있어야 했을 사전 사고 대비책 부실이 만든 참사라고 주장한 근거다. 쉽지 않았었겠지만, 인파 통행 방향, 밀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전에 사고 가능성에 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형 압사 참사는 예고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는 차제에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더는 대형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다층적·다각적으로 면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미증유(未曾有)의 대규모 도심 인명 참사에 지금은 전 국민 모두 한마음 되어 졸지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기 수습은 물론, 재발 방지에 국가역량 집주(集注)해야 할 때다. 모든 응급의료체계를 가동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사고의 상처와 후유증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한 것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국가 경쟁력도, 기업 경쟁력도 국민 행복도 모두 안전에서 출발한다. ‘안전’은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이자 최상의 가치인 이유이다. 관련 시스템 보완은 물론 경제 논리에 밀린 안전불감증의 치유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아울러 젊은 청년들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에 보다 투철한 인식과 철저한 대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전 소방준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