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산업데이터 교환 생태계 구축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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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KDI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DB]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불과 1년 전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아시아 사람은 중국이 유일했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2025년 하노버 산업박람회(Messe)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많은 기업인들이 무리를 지어 진지한 자세로 듣고 질문했다. 그들의 초점은 산업데이터였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9년부터 가이아엑스(Gaia-X) 데이터 공유 프레임워크를 통해 기업 간, 산업 간 데이터 교환을 고민해왔다. 일본 역시 2020년부터 산업 간 데이터 교환을 위한 '우라노스 에코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EU 주도의 데이터 공유 생태계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자국 플랫폼을 구축해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올해는 더 많은 X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지난해만 해도 신뢰 기반 데이터 교환 개념 체계인 가이아엑스 자체에 집중됐지만 이제는 기본 개념 위에 다양한 각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카테나엑스(Catena-X)가 대표적이다. 독일 완성차 산업이 중심이 된 데이터 생태계다. 복잡한 공급망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간 데이터 공유와 협업이 필수적이고,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종 산업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교환이 필수라는 인식 하에 구축됐다.

BMW는 보쉬·덴소 등 주요 부품 공급업체들과 차량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부품 품질 문제를 조기에 감지해 문제 해결을 4개월이나 단축할 수 있었다. 데이터 공유 덕에 품질 문제의 원인이 신속히 파악된 결과다. 불필요한 리콜을 방지하고, 공급업체 모두 비용 절감이 가능했다. 일본의 우라노스 플랫폼도 카테나엑스 플랫폼과 데이터를 협력한다. 이를 통해 일본의 배터리 제조기업들은 EU 규제에 맞춘 탄소발자국과 추적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유럽 시장 접근성을 확보했다.

EU의 시선은 이제 제조업 전반으로 향한다. 공급망 전체가 제조 데이터 교환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EU가 2050년 완성을 목표로 추진 중인 '순환경제전략'과도 맞물린다. 다시 쓸 수 있는 부품을 골라 자원의 투입과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EU는 DPP(Digital Product Passport) 도입을 통해 순환경제 구현을 시도 중이다. DPP는 제품에 관한 핵심 정보를 담은 데이터 덩어리다. 제품이 EU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재료·사용이력·재활용 방법·탄소발자국 등을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를 유럽에 제공해야 한다. DPP를 의무화해 2026년(일부는 2027년)부터 전기차·대형 산업용 배터리는 성능과 상태·소재·재활용률 등의 정보 공유를 강제한다. 제조 경쟁력 유출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제는 서둘러야 한다. 개인정보 탓에 디지털 경쟁에 뒤처지고 있다는 틀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자국 플랫폼이 존재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위안도 제조업 측면에서는 무의미하다. 제조 과정에서 축적되는 엄청난 데이터가 기업 간, 심지어 같은 회사 내 부서 간에도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상호 신뢰가 부족한 탓이다. 신뢰의 부족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 결과가 시장 전체에 효율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판 시장실패인 셈이다.

해결책은 데이터 거래규칙 마련에 있다. 그 기반 위에서 데이터 교환이 이뤄지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한국판 가이아엑스와 카테나엑스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산업데이터를 산업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전략은 종합적인 요인을 검토해 수립된다. 데이터 이슈이니 과기정통부가, 제조업 이슈이니 산업통상자원부의 영역이라는 단편적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 데이터 교환은 기술임과 동시에 제조·통상 이슈다. 이미 많이 늦었다. 수면 위로 나타난 유럽의 성과가 크지 않아 조급함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만 경쟁국들은 탄탄하게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한국의 성장 기반은 여전히 제조업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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