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의 잊혀진 의병장 기억해야 할 의병장 최문병 장군 기리는 춘향제 열려

  • 용계서원에서 후손 및 의병장 후손들 모여 최문병 장군 공적과 인품 기려

  • 사재 털어 전사자 가족 도와…청빈의 삶 실천한 유학자, 청백리

  • 역사적 검증 통해 경산시 역사 아이콘 삼아야

용계서원에서 최문병 장군을 기리는 춘향제를 봉행 하고 있다 사진김규남 기자
용계서원에서 최문병 장군을 기리는 춘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김규남 기자]
지난 12일 경북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에 소재한 용계서원에서는 뜻 깊은 춘향제가 열렸다.
 
이번 춘향제(이하 '향제')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크게 활약했고 유학자이며 청백리인 성제(省濟) 최문병 장군이다.
 
이번 향제에는 최문병 장군의 후손들과 영남 각지의 의병장들의 후손들 및 근방의 유림들이 모여 장군의 애국 애민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자리가 됐다.
영천성 탈환의 선봉장··· 영남의병을 이끄는 핵심 의병장
최문병 장군은 1592년 임진년 4월 왜군의 15만 대군이 부산포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진군할 때 현재 경산 용성에서 분연히 격문을 발표하고 의병을 모아 이 땅을 침략한 왜군을 몰아 내는데 신명을 다 바쳤다.
 
이때 최문병 장군은 나라의 변고를 미리 예측해 선산에 대나무를 심어 화살을 만들고 병장기를 준비하는 혜안과 선견지명을 보였다.
 
또한 장군은 사재를 털어 군자금으로 사용해 영남 지방 어느 의병들보다 경산의 의병이 사기가 높았다. 장군은 이 여세를 몰아 그 당시 육전(陸戰) 최초의 승리인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좌군을 맡아 조총을 앞세워 수성에 총력전을 펼치던 왜군에게 직접 도성(성벽을 넘음)해 왜군을 무찔러 영천성 탈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천성 전투의 승리는 그간 왜군의 조총 앞에 무기력 하기만 하던 조선 관군과 의병들에게 승리의 자신감을 심어줬으며 전기(戰氣)의 우위를 잡는 ‘터닝포인트’의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이 승리의 중요성과 최문병 장군의 활약상은 조선왕조실록, 징비록, 장군의 저서인 성제실기에도 수록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싸움이다.
 
따라서 그 당시 최문병 장군의 위상은 경남 의령의 홍의장군 곽재우, 영천성 싸움의 주역 권응수 장군, 호남의 김덕령 장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있었다.
용계서원 숭의문 모습 사진김규남 기자
용계서원 숭의문 모습. [사진=김규남 기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애민 유학자
최문병 장군은 전후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남아있는 사재를 전쟁에서 가장을 잃은 가구에 나눠주고 자신은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했다.
 
장군의 평생의 좌우명이 된 “지나친 재물과 권력욕으로 마음의 죄를 짓지 말자”도 이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장군은 또한 후손들에게 관직에 나가지 말고 초야에서 선비의 도를 지키며 살도록 유언해 후세 ‘청백리’로 지정됐다.
 
그러나 후세의 최문병 장군의 평가는 박할 만큼 초라하다. 전국에서는 물론이고 장군의 고향인 경산에서조차 장군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어 그 존재감은 희미하기만 하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경남 의령군의 아이콘이 된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까지 최문병 장군의 흔적과 공적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장군의 후손과 그리고 임란 때 장군과 생사를 의탁하며 싸운 인접 도시의 의병장들의 후손들이 매월 봄에 ‘용계서원’에 모여 장군의 뜻과 공적을 기리는 ‘춘향제(春香祭)’를 봉행하기 때문이다.
용계서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임란 의병장 최문병 장군 신도비 모습 사진김규남 기자
용계서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임란 의병장 최문병 장군 신도비 모습. [사진=김규남 기자] 
최문병 장군 삼성현(三聖賢)과 함께 경산의 역사 아이콘으로 발전 가능성
향제에 참석 하기 위해 영천에서 온 C씨는 “나라의 누란의 위기에서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나라를 지킨 최문병 장군이 후대에 이런 초라한 대우를 받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의 의병장들은 지역 축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지역과 함께 그 공적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반면 최문병 장군은 그 공적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경산시는 신흥도시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 풀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최문병 장군을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스토리텔링화’해서 경산의 아이콘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경산시는 삼성현(三聖賢)과 함께 또 하나의 역사의 아이콘을 보유하게 돼 대도시 인근의 신흥 도시의 문화적 빈곤 문제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산시립박물관에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최문병 장군이 사용하던 ‘말안장’ 등의 다수의 유물이 전시돼 있고 경산시는 해마다 용계서원에서 열리는 춘향제에 소정의 금액을 예산으로 편성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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