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국민의 민주주의 학습과 한국적 '상식'의 탄생

이춘구 언론인
[이춘구 언론인]


 
12.3 비상계엄과 4.4 헌법재판소 대통령 파면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정당 간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주의 학습이 성숙하면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큰 충돌 없이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해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적 학습과 권위주의에 대한 본능적 거부는 한국적 '상식'의 핵심 동력이다. 이로써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이의를 유보하고 탄핵선고를 수용하게 됐으며, 야권은 국민의 승리라며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상식(Common Sense, 1776)』에 입각해 한국의 12.3 비상계엄과 4.4 대통령 탄핵사태 극복을 위한 국민적 역량과 노력에 대해 조금 더 심층적으로 접근해본다. 페인의 '상식'은 단순한 정치 팸플릿이 아니라, 국민이 자각한 ‘자유의 이성’을 바탕으로 권위에 저항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만들려는 강한 정치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인은 이 책을 평이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써서 일반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상식,은 미국 독립선언서 발표 전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인의 '상식,은 미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소책자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페인은 먼저 군주제와 세습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한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세습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왕정, 특히 세습 군주제는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하며 인류의 고통을 증가시킨다. 영국 왕(조지 3세)은 미국 식민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이다. 둘째 영국과의 결별 필요성을 주장한다. 영국은 ‘모국’이 아니라 식민지를 착취하는 외세일 뿐이다.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은 영국과 멀어져야 하며 독립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영국과의 관계는 미국을 계속해서 전쟁과 국제 분쟁에 휘말리게 만든다.
셋째, 미국의 독립과 공화정 수립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미국은 규모나 자원 면에서 독립할 준비가 돼 있으며, 자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 공화정(republic)이야말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당한 정치 체제이다. 독립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자유를 위한 정의로운 투쟁이다. 넷째, 지금이 독립의 결정적 시기임을 강조한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왔으며, 더 이상 미루면 기회는 사라진다. 독립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상징적 행위가 될 것이다.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의 결론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이다. '상식.과 한국 현대사의 접점으로 해석되는 이유이다. 페인은 세습 권력과 통제를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과 자연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다. 한국의 12.3 비상계엄 시도나 4.4 탄핵 상황에서도 국민은 비상적 통치권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비상계엄 선포는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의 유령을 떠올리게 했고, 이에 대한 사회적 면역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국민 다수는 "질서 유지를 위한 예외적 조치"보다 헌정 질서와 절차의 존중을 우선시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론은 서재의 낡은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는 『상식』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에 맞는 합리적 정치"와 맞닿아 있다.
국민의 민주주의 학습과 성숙은 한국적 '상식'의 탄생을 낳았다. 페인은 대중이 정치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임을 전제로 '상식' 저술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 역량과 맞물린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운동, 촛불혁명, 대통령 탄핵, 이번 사태까지 거치며, 국민은 권력의 비정상적 작동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집단적 학습 능력을 축적한 것이다. 특히 정당 간 갈등이 첨예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선거, 헌법재판소, 국회 등 제도적 절차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는 ‘제도화된 합리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 볼 수 있으며, 페인이 주장한 공화정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뢰는 단순한 제도 충성이라기보다는 시민 스스로가 제도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구성해가는 ‘참여적 정당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페인이 말한 “국민의 이성적 동의에 기반한 통치”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정당정치의 위기 속에서도 절차를 지켜낸 국민의 선택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페인은 '상식,에서 지배자의 무능과 위선을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 질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의 최근 상황에서도 정치 엘리트의 신뢰 위기 속에, 국민은 무정부 상태나 극단적 대결이 아닌 헌법 절차를 선택했다. 4.4 탄핵사태는 민주주의의 위기였지만, 이를 헌법재판소를 통한 해결로 귀결시킨 것은 국민적 합의와 인내의 성과이다. 이는 페인의 주장처럼, 국민이 정치적 통치자보다 더 성숙한 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 회복과 지속가능성은 한국적 '상식'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로의 진화를 열망하고 있다. 권위주의의 부활에 대한 본능적 거부는,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사회적 본능’이 됐으며, 평화적 시위, 시민 토론, 독립 언론의 성장 등은 민주주의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내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적 '상식'은 다음과 같은 철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고 실천되는 삶의 방식이며, 그 주체는 바로 국민이다.” 이는 페인이 원했던 공화정의 정신을 동시대에 재해석한 21세기적 시민주권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페인의 '상식'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확인하게 됐다. '상식'은 시대를 초월해 자유, 합리, 자각된 시민의 힘을 강조한다. 한국은 정당 정치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국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살리는 방식’을 학습해왔고, 이는 단지 제도적 성공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민적 역량의 철학적 승리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의 이성적 동의에서 나온다.”는 ‘한국적 상식’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적 '상식'은 세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국민주권과 절차적 합리주의의 희망적 모델이 되고 있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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