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베트남은 올해 통일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여러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고 있다. 거리에는 베트남 국기와 공산당기뿐만 아니라 통일 전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NLF, National Liberation Front)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경축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베트남 국기와 NLF 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그간 NLF 깃발이 거리에서 공공연히 휘날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사이공에서 호찌민시로 이름을 바꾼 거리에서 통일 50년 후에 다시 휘날리게 됐다.
50년 전 베트남이 통일될 때 마지막 모습은 이러했다. 1975년 4월 30일 NLF 기를 단 북베트남 탱크들이 사이공 거리에 쇄도했다. 11시에 843호를 비롯한 T-54 탱크들이 남베트남 대통령 공관인 독립궁의 철문을 부수고 경내로 진입했다. 이 장면은 남베트남 정권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탱크에서 내린 한 병사는 NLF 기를 들고 독립궁으로 달려 들어가 위층 발코니에서 이 깃발을 휘날렸다. NLF 기는 위, 아래에 반씩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된 바탕에 금빛 별을 가운데에 둔 것이었다. 북베트남 및 통일 베트남의 국기가 전체 빨간색 바탕에 금빛 별을 둔 것과 조금 달랐다. 이 기는 1960년 NLF가 결성되며 사용되다가 1969년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가 결성되면서 계속 사용된 것이다. 통일의 순간에 이 깃발을 휘날린 것은 남베트남 내 공산세력이 주도하는 NLF와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가 남베트남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독립궁 내에는 28일부터 사흘째 대통령직에 있던 즈엉반민 대통령과 각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이전 10년간 남베트남을 통치하던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은 4월 21일 그 직에서 물러난 후 26일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그해 11월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는 통합을 결정했다. 베트남은 다음 해 전국 총선거를 치러 통일 국회에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출범했다. 이로써 장기간의 베트남전쟁은 끝났고, 베트남은 독립과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NLF 기는 사라졌고 사회는 북부 주도로 통합돼갔다.
정치지도자들은 민족적 대업의 성취에 열광하느라 전쟁을 겪어낸 사람들의 간난신고한 삶을 잘 보지 못했다. 이를 살피는 일은 베트남인 작가들이 맡았다. 그들은 소설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렸고 읽는 이에게 공감과 위안을 줬다. 최근에 한글본으로 출간된 스엉응웻밍 작가의 <랑하의 밤>과 응우옌판꾸에마이 작가의 <산이 노래하다>도 그렇다. 이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과 전후에 겪어낸 삶을 엿볼 수 있다.

스엉응웻밍 작가의 <랑하의 밤>과 응우옌판꾸에마이 작가의 <산이 노래하다>
- 소설에 그려진 전쟁의 이면
<랑하의 밤>은 현역 군인 작가 스엉응웻밍의 단편집이다. 여기에 들어 있는 '랑하의 밤'은 주인공 쯔엉이 전쟁이 끝난 후 랑하 마을의 집에 돌아왔지만 기족들에게 자신을 밝히지 못하고 쯔엉의 친구라고 둘러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가 자신을 밝히지 않은 것은 전쟁에서 상처를 입어 얼굴이 흉측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목욕하는 아내를 보고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안타까움을 삭여야 했다. 쯔엉이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에게 청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도 일그러진 얼굴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마침내 그는 떠나고 만다. 떠나는 기차에서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배낭끈을 꽉 쥐면서...
'쩌우강 나루터 사람'은 전쟁터에 나갔던 이모가 돌아오지 않다가, 가족들이 그의 전사통지서를 받은 후 이모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다른 여성과 결혼하는 날에 이모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남자는 기술을 배우러 외국에 갔을 때 밤마다 이모를 생각했고, 이모는 쯔엉선 산맥에 있을 때 일기의 페이지마다 남자의 이름을 적었다. 이모는 쯔엉선 산맥에서 싸웠고 무릎을 다쳐 절단하여 불구의 몸이 됐다. 쯔엉선 산맥은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 서부 산간지역이다. 여기에 전쟁 시기 북에서 남으로 군인과 군수물자를 나르던 호찌민 루트가 있었다. 이모가 돌아오는 날 이모의 연인이던 남자는 외국에서 돌아와 다른 여자와 결혼축하연을 연다. 이모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된 남자가 이모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만, 불구가 된 이모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이모는 여군 간호사였기에 마을 진료소를 맡는다. 옛 연인의 아내가 출산에 어려움을 겪던 끝에 이모가 아이를 받아낸다. 그 부부는 아이 이름을 이모의 이름과 같게 짓는다. 이모는 숙모가 죽으며 남긴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붉은 단풍잎'은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여성이 강간을 당해 생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으로 인해 전후에 연인과 사랑을 나눌 수 없어 고통을 겪는 이야기다. 두 연인은 파리의 분위기 좋은 방에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으나 여성의 PTSD로 인해 환영이 보여 중간에 멈춰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대사의 시련을 이겨낸 삶
<산이 노래하다>를 쓴 응우옌판꾸에마이는 남부 박리우(박리에우)에서 난 여성 작가다. 그러나 소설은 응에안, 하노이 등 중북부와 북부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주로 다룬다. 소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 일본의 점령, 북부의 대기근과 토지개혁, 그리고 분단과 전쟁, 통일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흐엉은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 하며 가족들이 겪은 시련을 드러낸다. 남부 밀림으로 가 수년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어머니가 군의관으로 자원하여 남부로 갔기에 흐엉은 할머니와 주로 살아간다. 할머니의 고향은 중북부 응에안이었다. 일본 점령기에는 대기근을 겪어야 했다. 베트남은 1945년 해방된 후에 프랑스가 다시 식민지배를 복구하려고 획책해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고, 이후 1954년 종전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됐다. 북부에서는 토지개혁이 전개됐고 일부 지주들이 희생됐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흐엉의 삼촌들은 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이어 남북 간 전쟁에서 미국이 남부를 지원하며 북부에 대한 공습을 가했다. 흐엉은 미군의 하노이 폭격을 피해 방공호로 피하던 일, 할머니와 함께 지방으로 피난 가던 일을 상기한다. 1975년 전쟁은 끝났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어느 삼촌은 오지 않았다. 흐엉은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날, 할머니와 나는 서로 축하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평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와야만 찾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베트남에는 지금도 전쟁으로 희생된 부모나 자녀를 가진 가정이 많다. 흐엉의 기준으로 아직 평화가 찾아오지 않은 가정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독립, 전쟁, 통일의 대업 뒤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겨내고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냈다. 작가들은 이들의 삶에서 고통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켜 낸다. 이처럼 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통일만큼이나 값진 사람들의 삶을 세심히 살피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도 필요하다.
<산이 노래하다>에서 할머니가 해준 말을 다시 새겨본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베트남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은 저 산만큼이나 높았어. ... ... 인생사에서 한 발짝 물러서면 비로소 전체를 볼 수 있는 법이란다.”
전쟁과 가난과 억압의 현대사를 헤쳐온 베트남인들의 삶에 같은 고난의 역사를 이겨내온 한국인들은 공감하게 된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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