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금융정책 시장에 맡기고 서민 지원 집중해야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금융시장은 시장경제의 혈관이다. 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자금은 사람 몸의 피처럼 경제 전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흐름이 자유롭고 원활할수록 경제는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금융정책,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이러한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이고 있다. 가장 먼저 고통을 겪는 것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금융 접근성이 낮은 서민들이다.

DSR 규제는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꾀한다는 점에서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제도는 금융의 문턱을 높여 실수요자들이 필요한 자금을 적시에 조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매출 변동이 큰 자영업자나 담보 자산이 부족한 청년층, 은행 거래 실적이 부족한 중소기업 대표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우리 경제의 허리다. 전체 근로자 중 88%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다. 고용의 90%는 기업이 만든다. 국내 고용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 이는 곧 내수 침체와 실업 증가로 이어진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DSR 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이는 주택시장 문제의 근본 원인을 비켜간 처방에 불과하다. 집값 상승의 핵심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수요는 억제한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억제된 수요는 언젠가 다시 분출된다. 아파트처럼 공급 탄력성이 낮은 상품은 수요를 조절하는 정책만으로는 가격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아파트 공급에는 통상 5~1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토지 확보, 인허가, 착공, 분양, 입주까지 전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 소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일관된 정책 아래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공급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수시로 대출 규제, 세금 정책, 공급계획을 바꾸면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 실수요자는 언제 집을 마련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무주택자, 청년, 서민이 피해를 본다.

주택 공급은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수익성과 수요를 판단해 공급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정부는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로 기반을 다져야 한다. 정부는 공공주택 등으로 취약계층을 보완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힘에 맡겨야 한다. 수요 억제 정책은 단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으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수급 불균형이 심화돼 가격은 다시 상승한다.

무엇보다 금융은 실수요자가 집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자금 조달이 막히면 집을 살 수 없고 주택 소유는 일부 고소득자와 자산가의 전유물이 된다. 이는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을 차단한다. 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앗아가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주거 문제는 사회 전체의 불만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 규제도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들은 주거와 동시에 사업 자금의 주요 수요자다. 금융이 막히면 사업도 삶도 위태로워진다. 서민 경제가 침체되면 내수 시장이 위축되고 이는 전체 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게 된다.

물가 상승, 6% 넘는 대출금리 인상, 내수 침체까지 삼중고에 처한 상황에서 금융 규제까지 겹치면 이들의 생존 기반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은 기업의 숨통이고 자영업자의 생계선이다. 이 흐름이 막히면 경제는 순식간에 경색된다.

이제 정부는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그 속에서 소외되거나 위기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특별 금융 지원,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 확대, 청년층의 미래 소득을 반영한 맞춤형 대출 제도 등이 필요하다. DSR 규제도 일률적 적용보다는 탄력적 운용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나 업종 특성, 지역 경기 등을 고려해 차등 적용하는 유연한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중심은 사람이다. 금융정책 역시 서민과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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