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한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필자는 병원에서 “요시히로님”이라며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때문에 처음 보는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직장에서 의료보험공단에 등록할 때 나의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등록해서 벌어졌던 일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을 앞에 이름을 뒤에 쓰는데 그것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뒤에 오는 것이 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은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주로 “오가타씨”, “오가타 선생님”처럼 성으로 부른다. 친한 친구끼리도 성으로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는 약 13만 개의 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 존재하는 성은 외국 출신자의 ‘창씨’를 포함해 최근 5000여 개가 되었다고 하니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성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성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 반면에 필자가 한국에 있을 때 일본 지인으로부터 “김 교수, 알죠?” 같은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김 교수”는 많이 알고 있지만 어떤 “김 교수”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비교적 흔한 성의 경우 주변이나 직장, 학교 등에 같은 성을 가진 동료나 친구가 여럿 있을 경우가 있고, 그때는 이름으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이는 드문 일이다. 기본적으로 성이 한자이기 때문에 발음이 같아도 한자가 다르면 당연히 다른 성이라는 인식이다. 필자의 “오가타”라는 성만 해도 언뜻 떠오르는 한자만 해도 “緒方”, “緒形”, “尾形”, “小形”, “小方” 등 다섯 종류 이상은 있다.
뜻하지 않게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 버렸는데, 이름에 관한 화제를 칼럼의 주제로 삼은 것은 현재 일본에서 성씨를 둘러싼 법 개정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 여부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결혼할 때 남녀 중 어느 한쪽이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자신의 성씨를 포기하고 상대방의 성씨를 가지게 되는 것이 법적인 의무인 것이다. 그리고 혼인 시 실제로는 95% 이상, 여성이 남성의 성씨로 바꾼다. 법적으로는 남녀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원래 제도상 호주(戸主)의 성씨로 통일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의 성씨를 따르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지금도 여성의 성씨가 바뀌는 것이 바로 결혼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호적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 원래 호적제도 하에서 결혼이란 며느리를 호주 밑으로 편입시키는 제도였기 때문에 아직도 결혼을 “입적(入籍)”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뀐 현재 호적제도 하에서는 호주인 남편의 아버지 밑으로 “입적”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두 사람이 새로운 호적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 어느 호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법적으로는 “입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결혼을 “입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어서 TV 방송 등에서도 그 표현을 많이 듣는다. 남성이 호주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성이 성씨를 바꾸어 남편 호적에 들어간다는 감각이 아직도 널리 공유되어 있는 듯하다.
성씨를 바꾸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거 대일본제국이 식민지에서 창씨개명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조선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일본에 동화시키려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 폭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동성이 강요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많은 여성이 가부장제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다. 실제로 결혼을 통해 남편과 같은 성씨를 가지게 되는 것을 행복한 일로 여기는 여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그것을 ‘행복한 일’이라고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존재하는 것 또한 확실하다.
부부동성 제도의 실제적인 폐해도 크다. 가장 현실적이고 단적인 문제는 각종 명의변경 절차에 따른 부담이다. 성이 바뀐다는 것은 운전면허증이나 건강보험증, 여권 등 공적 서류의 명의변경은 물론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등 금융자산 관계의 명의변경, 휴대폰 명의변경, 그리고 직장에서는 사원증이나 메일주소의 재등록, 명함의 재제작 등이 있으며, 사소하게는 각종 서비스의 회원등록명 변경, 포인트서비스 이행에 이르기까지 번잡하고 방대한 양의 절차가 필요하다.
좋든 나쁘든 한국처럼 개인정보의 전산화가 상당히 진행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이 방대한 양의 명의변경을 하게 되면 상당한 노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본 사회처럼 개인정보가 전산상으로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아 하나하나 본인 확인 및 증명을 하면서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라면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작업이 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 대부분의 절차는 성을 바꾼 여성만이 겪어야 할 노고인 셈이다.
폐해는 이런 구체적인 작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씨를 바꾸는 일은 직장 등의 인간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필자와 같은 연구자의 경우 성이 달라짐으로써 독신 시절 쌓아온 실적이 연계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성으로 검색해도 과거 실적과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특히 영업직 등에서는 지금까지 쌓아 온 신뢰관계나 거래처와의 인맥 등이 이름을 바꿈으로써 끊어져 버리는 등, 일시적으로 리셋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성씨를 바꾸면서 결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에 대해 의도치 않게 홍보하고 다니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혼한 경우에도 원래 성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그런 개인 사정까지 사회에 공표하고 다니는 꼴이 되어 그 정신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널리 퍼지게 된 것이 ‘통칭’의 사용이다. 비록 법적인 성씨가 변경되더라도 옛 성씨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주민등록이나 마이넘버카드(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에 옛 성씨를 병기할 수 있도록 2019년 일부 법 개정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옛 성씨의 사용이나 병기가 허용되더라도 여전히 불편한 일은 많다.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것일수록 결혼 후 성씨를 변경하는 것 외에도 옛 성씨 사용을 위한 복잡한 절차와 큰 부담이 발생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무처리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 등으로 통칭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법적 본명만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일본 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법무부가 법제심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1991년,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민법 개정을 제고한 것은 1996년이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된 것은 훨씬 이전일 테니 벌써 30~40년 이상 논의해 온 셈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이 문제를 방치하고 외면해 왔다.
정치가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으니 소송도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2015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 판결에서는 부부동성 의무 규정이 위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재판관 15명 중 5명이 부부동성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민법 750조 규정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 요청에 비춰 합리성이 결여돼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한 15명 중 3명이었던 여성 재판관은 모두 위헌 판단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최고재판소의 재판관 15명 중 여성이 3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일본 사회의 뒤떨어진 현황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한국 헌법재판소의 지난 대통령 탄핵 파면 선고 소식을 TV 등을 통해 접한 필자의 주위 일본인들은 “한국은 대단하다. 8명 중 4명이 여성 재판관이구나!”라며 감탄했다.
그런 일본이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선택적 부부별성 문제가 마침내 쟁점으로 떠올랐고,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 중에도 부부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의의 진전이 기대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검토를 하자는 것인가. 부부동성에 집착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부부별성을 인정하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동성인 것이 가족의 “일체감”이자 “유대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동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하거나 재혼하면 자녀가 그때그때 성씨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부모와 성이 달라 “평범하지 않다”는 주변의 시선을 받는 등의 폐해도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부부동성을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일본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성씨를 바꿔야 하는 사람의 95%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차별적 제도로 인정해 수차례 제도 개선 권고를 낸 바 있다. 과거 동성을 의무화했던 독일과 네덜란드는 1990년대에, 최근에는 2005년에 태국이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일본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원래 부부별성인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국가에서 가족들이 무너지고 아이들은 불행해지고 있어야 한다. 가족 관계를 이유로 부부별성을 강하게 반대하는 자민당의 한 보수 정치인이 사실 배우자와 별거 상태라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애초에 가족의 행복이 성씨 하나로 결정될 리 없지 않은가!
지금 제기된 제도 개선은 부부별성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혼할 때 남자 쪽 성을 고를 수도 있고 여자 쪽 성을 고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성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려는 제도일 뿐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수파는 앞서 말한 가족의 “유대감” 외에 “이미 통칭 사용 기회가 늘고 있다”는 이유를 언급하며 법 개정을 거부한다. 유엔의 권고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견이 분분하다” 등을 핑계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상당수 여론조사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 이상이고 반대 여론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엔의 권고는 일본의 제도가 차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평등의 문제로 보는 것이지 다수결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인권문제이다. 일부 소수 강경 보수 정치인의 전혀 논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주장 때문에 수십년 동안 인권과 평등의 문제인 부부별성을 둘러싼 제도 개선 문제가 계속 방치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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