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길, 돌아보니 '복사꽃밭'…노시인이 남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신경림 시인 사진창비
신경림 시인 [사진=창비]

“선생님은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죠.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도, 땅을 기는 굼벵이도, 초원을 달리는 사슴도, 그리고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는 늙은이도 아름답다고 했어요.”
 
고(故) 신경림 시인의 1주기를 맞아, 그의 미발표 유작 60편을 담은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창비)가 출간됐다. 시집을 엮은 도종환 시인은 고인의 시를 읽고 또 읽은 끝에 시집 제목을 이처럼 붙였다.

도종환 시인은 14일 서울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신경림 시인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제목을 정한 배경을 설명하며 “선생님은 우리가 유한하다는 것을 긍정하셨다”고 말했다.
 
“신경림 선생님은 유한하다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유한한 것 자체를 받아들이면서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삶을 긍정하는 자세, 수용하는 자세를 시를 통해서 보여주셨어요. 생애 마지막에 보여주신 선생님의 자세는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시에 들어있죠. 남아있는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 첫 구절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시집의 제목으로 삼게 된 이유죠.”
 
신경림 시인은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고 노래했다. 도종환 시인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흙먼지가 내 삶을 채웠지만 그래서 아름다웠다고 말하죠.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았어도, 돌아보면 그것이 복사꽃밭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분. 이런 분이 시인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노시인은 한결같았다. 80대 중후반 암으로 병상에 누워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도 시인은 “(이번 시집에는) 눈에 띄지 않는, 남들이 하찮다고 하는 사물, 꽃, 별, 사람들을 찾아 드러내, 그 존재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며 “아파하는 마음, 낮은 곳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같이 울어주는 게 시인의 역할이란 것을 끝까지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자리한 신경림 시인의 아들 신병규씨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삶의 막바지에서도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 한다'는 말씀을 반복하셨다”고 회상했다. 시인은 손주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마지막 순간,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손주들은 정말 잘 알아보셨죠.” 유고 시집에는 손주들의 목소리를 휴대폰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인의 마음이 담긴 시들도 포함돼 있다.
 
한편, 모교인 동국대에서는 15일 신경림 추모 문학의 밤이 개최된다. 유고산문집은 내년쯤 나올 계획이다.
 
살아있는것은아름답다 사진창비
살아있는것은아름답다 [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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