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물에 다가가야 물고기 속성을 알 수 있다

  • 차기 정부의 대중국 정책 방향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용인대 중국학과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지난 9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7년 만에 진행된 한국 정부 정기심의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한국 사회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인 한·중 외교관계가 무색할 지경이다. 지난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에 맞춰 불거진 중국 부정선거 개입 음모론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극도로 양분되며 국익을 저해하고 있다. 반중(反中)을 넘어 혐중(嫌中·Sinophobia) 정서로 확산되며 한국 사회가 정치 진영화되고 있다. 유튜브 중국 관련 영상콘텐츠 대부분 중국 붕괴론, 중국 위기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중국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 부각할수록 클릭 수는 더 올라가는 심각한 상황이다. 과거 반중 정서가 사드 사태와 동북공정의 특정 이슈에 따른 사회현상이었다면 혐중 정서는 중국을 적대국으로 보는 이념적 프레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반중과 혐중은 결국 반한(反韓)과 혐한(嫌韓)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향후 4년간 펼쳐질 미·중 패권전쟁의 강도와 파급이 더욱 강력해지면서 친미혐중(親美嫌中)의 국내 정서가 고착화된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국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2기의 미·중 관계를 ‘이제 가면은 벗겨졌다. 미·중 간 디커플링의 다음 장이 시작되었고,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세계 대혼돈과 격변의 시기 속에 우리의 생존형 대외전략 수립과 내부 전략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구축한 대한민국의 역량이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한·미 동맹의 고도화와 함께 대중국 외교 및 경제 관계를 재설정하고 교감과 협력을 강화하는 정책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향후 5년 차기 정부의 대중국 정책방향은 크게 세 가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첫째, 대중국 제재와 수출통제에 한국을 동참시키려는 트럼프 2기의 요구와 압박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우선 더욱 본격화되는 미·중 간 패권다툼의 정세 변화와 흐름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2기는 지난 바이든 행정부보다 더욱 강력히 동맹과 우방국들에 대중국 수출통제와 제재 동참을 요구할 것이다.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미국의 자체 역량만으로 중국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은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바이든식의 우회적인 압박과 달리 트럼프 2기는 관세와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등 한반도 안보이슈를 지렛대로 삼아 대중 제재에 동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지난 윤석열 정부와 같이 미국 중심의 올인 외교를 한다면 한·미, 한·중 관계 모두 요동칠 것이다. 또한 어정쩡한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대미, 대중 외교를 한다면 오히려 양국 외교 모두 망칠 수도 있다.
미국이 FTA를 체결한 여러 나라 중 한국이 가장 높은 상호관세율을 부과받았는데도 우리는 그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과 구체적인 이의 제기도 없다. 미국의 약점인 조선산업 협력과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등 우리가 줄 것부터 고민하고 있다. 미국입장에서는 한국은 쉬운 협상대상국으로 인식되어 그들의 요구는 더욱 선을 넘을 것이다. 미국의 불합리·불공정한 요구에 명확히 실용외교와 국익외교의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 이는 당당하고 강력한 대중외교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된다. 보수 대통령 후보의 ‘대중 외교는 상호존중과 규범존중에 기반한 외교를 표방한다’는 말의 전제조건도 대미외교의 상호존중과 국익존중에 기반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촘촘하고 디테일한 대중국 외교·경제안보·통상협력의 로드맵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우리의 대중국 정책은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전과 큰 변함이 없다. 중국의 변화를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이제 AI·우주항공·양자기술 등 첨단산업 고도화를 통해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와 회피심리가 팽배해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중 제재와 압박은 중국 기술자립과 산업성장 가속화의 촉매제가 되었다. 중국의 급격한 변화에도 우리 정부와 산업계의 대중국 정책은 여전히 엉성한 거대담론에만 매몰되어 있다. 글로벌 지정학·지경학적 소용돌이 속에 커져가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교와 경제안보의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한편 양국 간 산업구조 변화와 공급망 생태계 전환의 글로벌 통상환경 속에서 기존 한·중 FTA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서비스·투자의 2단계 협상이 아닌 새로운 버전의 한·중 FTA 2.0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미·중 경쟁시대 한·중 간 산업 협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중국도 결코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한·중 산업협력은 과거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이미 5년 전부터 신성장 동력산업을 두고 치열한 경쟁관계에 진입한 상태다.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가지고 양국 간 안정적인 산업공급망 구축과 수소경제, 디지털 산업협력의 고도화를 담대하게 진행해야 한다.
셋째, 미·중 간 경제전쟁의 나비효과에 대비한 철저한 K-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지금의 관세전쟁을 넘어 첨단산업·공급망·환율·전략물자 등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산업생태계의 대혼란과 함께 중국 기업의 탈중국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5년간 중국 제조기업이 미국·EU 수출을 위한 우회수단으로 한국 투자가 늘어난 배경이다. 특히 화공·기계장비·의료정밀·전기전자 등 분야의 제조업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 경제전쟁의 나비효과가 불러올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공습에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 제조산업 생태계는 큰 타격과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중국 스마트 제조혁신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한·중 간 산업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정부의 탈중국 정책으로 인해 우리 핵심산업 경쟁력이 중국과 초격차를 벌릴 수 있는 있었던 골든타임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이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차이나테크의 역습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차기 정부는 제2의 차이나쇼크에 대비한 대중국 산업전략 보고서 작성을 통해 K-제조업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형평성 차원에서 모든 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과거의 정책방식으로는 중국에 결코 대응할 수 없다.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의 초격차 유지를 위한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중국 속담에 ‘근수지어성 근산식조음(近水知魚性 近山識鳥音)’이라는 말이 있다. ‘물에 다가가야 물고기의 속성을 알 수 있고, 산에 다가가야 새소리를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 다가가지도 않으면서 초격차 전략을 논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차기 정부의 대중국 전략의 외교 유연성과 통상협력의 과감성을 기대해 본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와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궁걷기대회_기사뷰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