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저우는 창업혁신의 옥토다. 과학기술엔 국경이 없듯, 이곳에서 세계는 평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중국 항저우 빈장구 하이촹기지(해외인재 창업기지)에서 만난 뇌 과학 스타트업 만안커지(마인드앤젤)의 쑹싱 최고경영자(CEO)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른바 ‘하이구이(海龜·해외 유학파)’다. 쑹 CEO가 이곳 항저우 빈장구의 하이촹기지에 입주한 것은 2014년. 10년 넘게 이곳에서 뇌 인터페이스 연구에 전념한 그는 현재 뇌파를 이용한 휠체어를 만들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해외 유학파 인재가 항저우에 와서 창업한 계기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고급 인재가 해외에서 귀국 후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 공간부터 기술개발 자금, 마케팅 홍보까지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격적 정책지원 "항저우 7룡 꿈꾼다"

이곳 해외인재 창업기지에는 현재 만안커지 외에도 100여개 기업의 3000여명의 인재가 창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급 인재들이 항저우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창업 지원) 작업은 물론이고 투자 유치와 창업 대회, 커뮤니티 공간도 제공한다. 입주율은 사실상 100%에 달하고 있다.
왕옌춘 하이촹기지 전문 연구원은 기자에게 “이들은 모두 ‘항저우 6룡(龍)’을 꿈꾸며, 스스로를 항저우 7룡·8룡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항저우 6룡은 '중국판 챗GPT' 딥시크와 로봇 기업 유니트리를 비롯해 항저우 소재 하이테크 스타트업 6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항저우 6룡’의 굴기와 함께 중국 과학기술 혁신의 중심지로 새롭게 떠오른 항저우는 그간 ‘중국판 실리콘밸리’라 불렸던 베이징·선전도 위협할 정도다.
왕옌춘 연구원은 “이는 정부 정책과 기업 친화적 환경,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빈장구의 '5050 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 해외 유학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으로, 매년 50명 이상의 고급 인재와 50개 이상의 연 매출 1000만 위안(약 19억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올해로 벌써 16년째 시행되고 있는 이 계획은 처음엔 해외 유학파 출신의 석·박사생을 주요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은 중국인·외국인을 막론하고 조건에만 부합하면 항저우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업고 창업할 수 있다.
5050 계획은 기업을 A+/A/B+/B/C 다섯 등급으로 나눠 사무실 임대료, 집세, 초기 창업자금, 연구개발(R&D), 인재육성 방면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최대 10억 위안 규모의 인재 펀드를 조성해 직접 혹은 공동투자를 하기도 한다. 왕 연구원은 “5050 계획을 통해 우수한 인재와 기업은 최고 2000만 위안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5050 계획을 통해 육성된 프로젝트만 1100여개, 프로젝트 생존율도 96%에 달한다. 이를 통해 탄생한 유니콘 기업이 46곳, 상장기업도 9곳에 달하고 있다.
"1㎢당 상장사 1개꼴" 도시 전체가 창업 인큐베이터
항저우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기업 우호적인 환경도 항저우가 블랙홀처럼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비결이다.
왕 연구원은 “빈장구에는 ‘쑤이자오쑤이다오(隨叫隨到), 숴다오쭤다오(說到做到), 쭈이둬파오이츠(最多跑一次)’라는 세 가지 구호가 있다며 이는 항저우의 기업환경을 잘 말해준다고 말했다. 세 가지는 각각 '기업이 부르면 정부는 언제든 달려온다', '정부는 말하면 실천한다', '기업이 번거롭지 않게 한 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는 “기업은 마치 씨앗과 같아서 정부가 토양을 잘 깔아줘야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다”며 “사실 우리는 어느 기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기업에 대해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지 기업들도 항저우 정부의 일 처리 효율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항저우는 예로부터 경제 중심지가 되기엔 열악한 조건이었다. 상하이와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데다가, 인근 닝보시보다 제조업 기반도 약한 탓에 상대적으로 영세 중소기업 중심의 민영경제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대다수 도시가 대형 국유기업을 선호했을 때, 영세 기업에도 자금·토지·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항저우의 정책 지원이 이어지며 과학기술 인재 풀이 형성되고, 이에 인공지능·사물인터넷·클라우드컴퓨팅·빅데이터·전자상거래 등과 같은 산업이 발전해 좋은 창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빈장구는 항저우에서도 혁신창업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중국 전기차 다크호스 링파오자동차(립모터스), 전 세계 1위 CCTV 업체 하이캉웨이스(하이크비전), '중국 자동차 공룡' 지리자동차 등이 모두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강남구와 송파구를 합친 정도인 총 면적 72.7㎢의 빈장구에 소재한 상장기업만 모두 74곳. 사실상 1㎢당 1개 상장사가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이곳 인구 평균 연령도 33.5세로 35세 미만의 청년 인구가 전체 인구(54만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빈장구 지역총생산액(GRDP)만 2887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17%에 달했을 정도로 고속성장세를 보였다. 항저우시 면적의 0.5%를 차지하는 빈장구가 현재 항저우시 GRDP의 13.2%에 기여하고 있다.
![항저우 빈장구 개요 아주경제DB]](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6/03/2025060306254573767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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