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로 인해 오염된 토양 처리 문제가 일본 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이를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 안전성과 국민 정서, 지역 간 형평성 문제로 인해 딜레마에 빠져 고심하고 있다.
후쿠시마는 한때 과일 재배로 유명한 농업 지역이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닥친 규모 9.1의 대지진 및 그로 인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강타해 발전소 내 수소 폭발 및 멜트다운(노심 용융)이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은 바다와 대기, 토양을 오염시켰다. 오염된 표토(표면 토양)는 고압 세척 등의 방식으로 처리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1400만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제염토(방사능 오염 토양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수거된 토양)가 후쿠시마 제1원전 근처의 중간 저장 시설에 저장돼 있다. 이는 도쿄돔 10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일본 환경부는 이 오염된 토양을 폐기하는 대신 도로 및 철도 제방 건설 자재, 농지 매립, 공원 조성 등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부 토양은 총리 관저의 화단과 꽃밭에 활용하는 상징적 재활용도 포함된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달 27일 각료 회의에서 제염토 일부를 총리 관저 내 정원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4년 만의 결정으로, 제염토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총리가 모범을 보이기 위한 차원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모범을 보일 것이며, 총리실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계획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기준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환경부에 따르면 보관된 토양의 약 75%는 일반인의 엑스레이(X선)에 노출되는 1회 수준 이하의 방사선량을 갖고 있다. 또 정부는 오염된 토양을 매립재로 사용해 후쿠시마에 도로와 밭을 건설하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방사선 수치 상승이나 외부 유출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국민적 반발은 거세다. 2022년 도쿄 공원 인근에 토양을 반입하려는 계획이 발표되자 수도권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계획은 무산됐으며 대체 부지 확보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이 수도권 전력 공급을 담당해 왔던 만큼 후쿠시마 외 지역에서도 토양을 수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지방 자치단체는 현실적으로 “일부 토양은 후쿠시마에 남겨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토지 수용에 소극적인 입장을 표했다.
따라서 정부는 올해 여름까지 토양 재활용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여론을 설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대부분 지역의 방사선 수준이 ‘안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선언했지만 상당수의 피난민들은 방사선 우려로 후쿠시마가 아닌 다른 지역에 정착했다. 특히 아동 건강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고, 대규모 토양 처리 문제가 완전히 처리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각종 우려 속에서도 일부 주민과 젊은 농부들은 후쿠시마로 돌아오며 지역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5세 농부인 타쿠야 하라구치는 “사람들이 후쿠시마가 요즘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AFP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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