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이 시작됐다. 언제든 새 정권이 들어서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기 마련이지만 이재명 정부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그의 국정 운영 철학이 과거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해온 말과 대선 때 발표한 공약을 종합하면 그의 국정 운영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의 책임보다 국가의 책임, 법보다 정의, 원칙 중심 외교보다 실용 외교다. 이런 국정 철학은 사회, 경제, 복지, 법치, 외교·안보 등 국정 운영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 변화는 불평등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낭비와 비효율, 혼란과 불안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삶에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중시한다. 대표적 사례가 ‘기본사회’ 공약이다. 그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은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사회로 나아가겠다”며 기본사회 공약을 발표했다. “태어날 때부터 노후까지 생애 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촘촘히 구축하겠다”며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 서비스 등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개인 책임보다 국가 책임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개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각자가 책임질 일이라는 개인 책임론과 다르다. 개인 책임론은 잘살고 못사는 것은 각자의 노력과 능력 차이 때문으로 본다. 개인 책임론은 각자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자극해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에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무시한 채 능력과 경쟁만 강조하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다.
국가 책임론은 개인 책임론이 불러오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경쟁에 뛰어들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주면 이들이 다시 경쟁에 뛰어들고 능력을 발휘할 여건을 갖추게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 책임론은 사회·경제적 약자 보호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 책임론에도 문제는 있다. 국가가 기본적인 삶을 책임져 주면 애써 노력해 뭔가를 성취하려는 동기와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그러면 사회와 경제의 활력과 창의성이 떨어지게 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이런 차이를 인정해 모든 국민을 일률적으로 지원하기보다 사회·경제적 약자 지원에 집중하면 그들에게 돌아가는 지원금 규모가 훨씬 더 늘어나 삶의 질이 그만큼 더 좋아질 수 있다. 이 대통령 말대로 “행복추구권과 인권”을 누릴 수 있다.
국가 책임론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현금성 지원이 가장 효율적일까 하는 문제도 있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청년 미래 적금’ 정책이 그런 경우다. 청년 미래 적금은 재정 부담이 너무 커 2023년 폐지된 ‘청년 내일 채움 공제’를 사실상 되살리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중소·중견기업 입사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과 기업, 정부가 2년간 400만원씩 적립해 총 12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해주는 사업이었다. ‘2년간 총 1200만원 목돈’이라는 일회성 현금성 지원이 청년 미래 준비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현금성이라 허투로 낭비되지 않고 미래 설계 준비에 쓰이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청년 내일 채움 공제’ 사업에 매년 1조3000억원 안팎의 예산이 들었다. 이때는 신규 가입자가 12만~13만명이었다. 신규 가입자 규모를 늘리면 재정은 더 많이 들어간다. 이 대통령이 2021년 대선 때 제기한 기본소득 공약에도 1년에 약 60조원의 재정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수조~수십조 원 예산을 현금성 지원으로 풀기보다 고등학생 직업 기술 교육, 중소기업 기술 지원 같은 제도적 지원에 쓴다면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 지원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법보다 정의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사법부를 “최후의 보루”로 규정하며 “최후의 보루의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를 하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사법부의 최고 책임이 바로 대법원에 있다”며 “깨끗한 손으로 (판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법원이 자신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을 깨고 유죄 취지 판결을 한 뒤 한 말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정의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사법 쿠테타’ ‘선거 개입’이라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청문회를 열고, 탄핵과 특검을 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당에서 국민 뜻에 따라 잘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사법부 성토와 압박을 잘못이라고 보지 않는 자세였다. 만약 잘못이라고 여겼다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자중하라’고 해야 했다.
법이 정의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합리할 수 있다. 법이 정의에 맞지 않으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러나 정의 여부의 판단은 주관적·자의적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대개 자기한테 유리하면 정의이고 불리하면 불의라고 한다. 민주당이 그렇다. 민주당은 서울고법이 이 대통령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1심 유죄를 깨고 무죄를 선고하자 ‘정의의 승리’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대통령의 위증교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판결을 하자 대법원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자기한테 불리하든 유리하든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따르는 게 법치주의이다.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정의를 내세워 사법부를 공격하고 압박하면 법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의를 빙자한 불법이 판치게 된다. ‘국민의 뜻’을 앞세운 여론재판이 횡행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판검사가 법을 왜곡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면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는 ‘법 왜곡죄’와 법관을 평가하는 법관평가위원회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판사가 민주당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하면 법 왜곡죄로 처벌하고, 법관평가위원회를 민주당 주도로 구성해 민주당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하는 법관들을 퇴출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법부 독립은 설 곳이 없어진다. 사법부는 법이 아니라 민주당 정권을 지키는 보루가 될 수밖에 없다.
원칙보다 실용 외교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외교안보 정책 발표문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협력을 견고히 하겠다. 일본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방위력 증강은 안보의 핵심"이라며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기반으로 한·미 확장억제 체계와 3축 방어체계를 고도화하고,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비 태세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는 "중요 무역상대국이자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지난 정부 최악의 상태에 이른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 언론 인터뷰에서는 일본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현재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는 역대 보수 정권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원칙이었다. 이 대통령은 사실상 그 원칙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한 셈이다. 진보·보수 정권을 떠나 이 원칙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이 원칙을 얼마나 지켜나갈 것이냐이다.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은 지난해 12월 7일 민주당이 주축이 돼 만든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외교·안보 관련 표현과 크게 다르다. 이 탄핵소추안은 “(윤 대통령이) 소위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했다"고 명시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로 취임한 뒤인 2022년 10월에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비난하며 “한·미·일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랬던 이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반미 친중·러’라는 의심과 비판을 받게 되자 선거용 임시방편으으로 그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이 대통령은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강조한다. 문제는 국익을 지키는 길이 무엇이냐이다. 원칙과 실용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이다.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5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 노선은 더 이상 안 된다고 우방국들에 경고했다. 원칙과 실용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중시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며 그 바탕 위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 실용을 추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대통령 국정 운영 3대 철학은 모든 국민이 기본적 삶을 누리고, 정의가 꽃피고, 국익 외교가 빛나는 나라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는 채 국가 재정 부담만 커지고, 정의의 이름 앞에 법치가 무너지고, 실용에 휘둘리다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나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의 3대 철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게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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