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사람들④]'86 운동권 스타'에서 국무총리로 李 동갑내기 김민석

  • 전략가 김민석, 비상계엄 예측해 '신명계' 핵심 부상

  • 18년간 야인 생활 견디고 초대 국무총리로 금의환향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민석 후보자는 1964년생으로 이 대통령과 동갑이다. 그는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초대 의장을 지낸 운동권 스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 그룹인 ‘신명계’ 일원으로 정치권 주목을 받는다.
 
김 후보자는 대학시절 이른바 ‘86세대 운동권’ 대표주자였다.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를 주도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6년 32세의 나이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며 '여의도 블루칩'으로 이목을 끌었다.

운동권 ‘성골’로 불리며 탄탄대로만 걸을 것으로 예상됐던 그는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과정에서 돌연 정몽준 캠프에 합류한 뒤 정치 인생에 암흑기를 맞았다.

김 후보자는 ‘배신자’, ‘철새’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대선 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서서히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김 후보자는 약 18년의 야인 생활 동안 중국 칭화대, 미국 럿거스대에서 현지 법을 공부하며 정계 복귀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 복귀한 김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심판론으로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다시 한번 승리해 4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당내 ‘비주류’로 밀려났던 김 후보자가 주류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는 2022년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기조연설이다. 김 후보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한 뒤 이 대통령이 당권에 도전하자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선거 책임론’을 제기해 정치권에서 잊혀졌던 김민석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후보의 ‘할 말은 한다’라는 강단 있는 모습은 긍정 평가를 받아 이재명 1기 지도부 출범 후 당 요직인 정책위의장에 발탁되는 요인이 됐다.

이재명 2기 지도부 출범 과정에서는 수석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신명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을 예측해 이재명 정부 탄생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비상계엄 저지에 공로를 세운 덕에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 김 후보자를 “풍부한 의정 경험과 국제감각, 민생 정책 역량과 통합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소개하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또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의혹에 불과하다고 한다. 청문회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낌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법정시한인 29일 전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될 것으로 전망한다.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24~25일 이틀간 열린다. 민주당이 총리 국회 임명동의안 정족 의결수인 재적의원 과반 이상 의석 수를 갖고 있는 만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는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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