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학생을 살리고 교사를 지키는 교육정책을 기대하며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고교학점제가 흔들린다. 교사 다수가 반대하고 전교조와 교사노조 등 교원단체마저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에게 수강 선택권을 주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욕적이고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2022년부터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시범 사업이 운영되었고, 올해부터 전국 인문계 고등학교로 확대하여 전면 실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입부터 시행까지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재명 정부가 지향해야 할 교육정책 방향이 엿보인다.
고교학점제는 실제로 선진적이다. 학생이 자신의 예상 진로에 맞춰 수강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하고 일정한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로, 자신의 수학 계획에 맞게 학점을 취득하는 대학의 학사제도와 유사하다. 다양한 교육과정 개설, 입시 위주의 교육 극복, 자기 주도형 학습 능력 제공 등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추구하고, 나아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해 고교 서열화 해소에도 도움을 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성화고의 시범 사업을 넘어 일반고로 전면 확대되자 곧바로 입시와 연계된 제도 미비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첫째는 교육의 형평성 논란이다. 지역 간, 학교 간 교육 자원의 격차로 학교마다 선택과목의 개설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육격차를 심화시킨다는 반발도 나왔다. 둘째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위한 전문 교사와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비판이다. 입시 성과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고충에다 학생의 다양성을 키워주려면 특단의 인적·물적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교육당국의 의지는 박약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불만은 학교마다 개설 과목과 평가 기준이 달라 대입용 내신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이다. 역시 내 자식의 대입 앞에서 평가의 공정성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막상 폐지를 선언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따른다. 고교학점제 도입을 믿고 자신의 진로를 설계한 학생들은 인생의 목표와 입시 전략을 재설정해야 할 형국이다. 일선 학교도 교육과정을 급선회하여 재편성해야 하니, 학교 행정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지고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은 극에 달할 지경이다.
돌이켜보면 고교학점제의 도입은 성급했다. 고교 교육의 대전환을 구현하는 정책인 만큼 입시제도와 연계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점이 매우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인 입시제도의 체계적인 보완이나 치밀한 계획 없는 교육과정의 전환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백번 양보해서 충분한 기간에 걸쳐 시범 사업을 진행하면서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담당할 교사 양성 방안, 교육환경 확충에 쓰일 예산 확보 및 효율적인 집행과 평가 방안이 선행되어야 했다. 좋은 취지라도 성급하게 도입된 교육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새삼 절감한다.
유사한 분위기는 AI 교육에서도 감지된다. 새 정부는 AI 3대 강국을 천명하고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거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대통령실에 AI 수석을 신설하고 민간 AI 전문가를 기용하여 화제를 모으더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도 대기업 AI 전문가를 지명했다. 챗GPT와 딥마인드로 상징되는 AI 전쟁에 뛰어들어 한국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국정기획위원회가 디지털 문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AI 교과 설치를 검토한다는 기사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개발한 AI 교과서가 좌초될 위기에 처한 사정을 살펴보면 AI 교과 설치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2023년 6월 교육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즉각 교육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교사가 AI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어떻게 AI 교과서로 가르칠 수 있느냐’는 비판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우려 반, 기대 반 기다리던 AI 교과서는 공청회 날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졸속 도입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마침내 올해 3월 전국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AI 교과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전국 1만1932개 초·중·고교 중 적어도 1종 이상 AI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3870곳으로 평균 채택률은 32%에 불과했다. 무리하게 도입된 AI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의 내용에 간단한 대화형 기능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입시용 참고서 정도로 적당하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나아가 학교가 충분한 디지털 환경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 가정의 디지털 환경 격차는 학생의 학습량 격차를 유발하고 교육의 형평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AI 교과서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습득만이 목적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 그리고 학생과 학생 간 소통과 협동을 통해 배움을 넘어 전인적인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잘못된 AI 디지털교과서 정책을 바로잡겠다.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규정하고 학교의 자율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당선 이후 AI 교과서는 거의 퇴출될 전망이다. AI 교과서 소동 역시 성급하고 무리하게 강행된 교육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입증한다.
 
대한민국 학교의 오늘은 우울하고 미래는 암울하다. 자살하는 초·중·고 학생이 계속 늘어 2024년에는 22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2025년 6월 25일). 교단을 떠나는 교사도 계속 늘고 있다. 2020~2024년 사이 정년 전 퇴직 교원 총 3만6748명 가운데 초등교사는 1만5543명, 중등교사는 1만2352명, 고등교사는 8853명이었다. 2020년 6512명에서 2024년 919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2025년 5월 15일). 그러나 생을 마감할 만큼 절박한 아이들의 외침과 신음소리에도 극심한 경쟁은 줄지 않고, 민원 때문에 가르치는 꿈을 접고 이직하는 선생님들의 항의에도 교육당국의 행보는 더디기만 하다.
교육은 껍데기를 바꾼다고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교육의 수준이 교사의 수준에 달려 있듯이, 교육 현장의 문제 해결은 교원의 신분 보장과 지위 향상에 달려 있다.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품을 수 있도록 여유와 사명감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교육권을 공교육이 되찾아와야 한다. 교육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교원에게 학생의 인격을 이끌고 생활을 지도할 권위 또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학업 성취를 사교육에 맡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학교는 그저 의무교육의 법적 테두리 속에서나 존재 이유를 찾아볼 지경이다. 수업 시간 내내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는 학생에게도 생활지도를 하지 못하는 교사가 어떤 수단으로 학생을 올바로 이끌고 지도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관계 역학 속에서 학부모는 교사의 학생 지도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간섭할 기회와 빌미를 찾는다. 자식의 교육은 어차피 사교육에 맡겼으니, 교사는 학생이 원하는 대로 그저 안전하게 졸업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주문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지점에서 공교육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된다. 교사들은 세태의 변화와 환경 탓을 하며 사교육 학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는 안이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는지, 공교육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혜안을 발휘하려 충분히 노력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교사의 교육권을 회복하고 극단적인 경쟁체제와 왜곡된 교육과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필코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수능을 대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로서 논술형 수능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들 수 있다. 올해의 논제는 '우리의 미래는 기술에 달려 있는가?' '진실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가?'였다. 자신의 생각을 주관적으로 서술하는 평가를 통해 우리의 극단적인 줄세우기 객관식 수능을 대체해도 좋을지 검토가 필요하다.
또 다른 사례는 국가 주도의 수능을 치르지 않는 독일의 방식이다. 고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아비투어는 주정부 교육부가 엄격하게 관리한다. 독일에는 ‘1도시 1대학’ 원칙 아래 전국에 대학이 고루 분포해 있고 대학의 수준이 비교적 균등하다. 독일 대학은 의학 계열과 정원 관리가 필요한 일부 전공을 제외하고 정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의 자율적 선택에 따른 운용이 가능하다. 대학 평준화를 통한 고교 정상화는 우리 현실에 맞을지 따져봐야 한다.
한편 미국 대학은 자격고사로서 미국식 수능(SAT)과 입시사정관제를 활용하여 신입생을 선발한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 대학은 좋은 교육에는 많은 투자가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하여 운영되기에 평판이 좋은 학교일수록 학비가 비싸다. 자신의 개성과 능력, 재력에 따라 대학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우리의 수시 입학제도의 보완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대목이다.
물론 상기 해외 사례들은 참고자료일 뿐, 미래지향적 한국형 선발 방식은 우리의 상황에 맞는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국운을 걸고 새 정부가 밑자락을 깔고 다음 정부가 이어받아 실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구상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이 각별히 주목된다. AI 시대에 부디 학생을 살리고 교사를 지켜내는 이재명 정부의 교육정책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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