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티키타카] 정치인에게 '악수'는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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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시사평론가]

장면1. 쳐다보지도 않았다.
 
왼쪽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왼쪽)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악수는 사람과 한다”라고 일갈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악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송언석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내뱉었다.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가 정청래하고 마음 편하게 악수할 사람이 있겠어요.” 악수하지 않는 정치로 기존 정치 문법을 두 사람은 뛰어넘고 있다. 앞서서 정청래가, 뒤를 이어서 송언석이...
 
장면2. 아픈 손과 언더독(Underdog)
 
언더독은 투견장, 그러니까 개싸움에서 비롯되었다. 투견장 싸움판이 벌어져 위에서 짓누르는 개를 '탑독(Topdog)'이라고 불렀고, 아래에 깔린 개를 '언더독(Underdog)이라고 부른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 언더독 효과는 약자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심리나 그를 응원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동정론’이라고 표현하면 더 익숙한 개념이다.
 
역대 대한민국에서 이 언더독에 가장 적합한 전략과 포지션을 보여준 정치인이 바로 ‘박근혜’였다. 선거에서 매번 이기는 강자보다는 절대적인 약자가 생각보다 잘 싸울 때, 그를 응원하고 뭔가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바로 언더독 심리이고 선거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박근혜는 언더독에 아주 적확(的確)한 후보였다. 2007년 이명박 후보와 당내 경선에서 맞붙은 박근혜 후보 측의 구전홍보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박근혜 후보는 부모를 흉탄에 잃고, 시집도 가지 않았다. 박근혜는 대한민국과 결혼했다."
 
대한민국과 결혼을 한, 부모 모두 흉탄에 돌아가신, 불쌍한 박근혜를 도와주자는 일종의 언더독 효과를 노린 구전홍보였는데, 상당히 잘 먹혔다. 그리고 나온 ‘붕대투혼’!!

 
2012년 4월 4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하여 상인들과 만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2년 4월 4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하여 상인들과 만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얼마나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손이 다 아파서 붕대로 감쌌을까? 많은 사람이 맘이 짠해져서 박근혜를 만나 악수할 때 붕대 감은 손 말고 왼손으로 악수했다고 한다. 물론 이 ‘악수신공’보다 더한 언더독 최절정은 이미 2006년 5월 20일 보여주었다. 신촌에서 벌어진 일명 커터칼 테러 사건과 “대전은요?” 발언으로 열린우리당은 그야말로 폭망했다. 그야말로 언더독 전략을 펼치는데 지금까지도 박근혜 후보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물론 2017년 3월 12일, 박근혜는 56시간 만에 청와대를 퇴거했는데, 그때에도 언더독이었다. 다만 손에 붕대는 감지 않았다.
 
장면3. 악명높은 트럼프 악수
 
지난 15일(현지시간), 성과 없이 ‘노딜’로 끝난 알래스카 회동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여준 이례적인 친밀한 악수가 보디랭귀지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악수가 서로 존중하고 친밀감을 보여주면서도 기 싸움도 어느 정도 벌였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 트럼프가 푸틴에게 쫄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악수 때문이라는데, 결과는 두고 봐야겠다.

 
지난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악수는 대부분 저돌적이며 공격형인데, 있는 힘껏 상대방의 손을 쥔 채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는 악수를 한다. 이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악수법이라고 한다. 기선제압은 물론이고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전략이라고 보디랭귀지 전문가들은 평하는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런 식으로 트럼프에게 19초 동안 손목을 잡혀 당황했다고 한다.
 
대부분 정치인은 트럼프의 이런 악수 공세(?)에 당황하지만, 오히려 트럼프를 당황시킨 정치인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2017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나 악수했는데, 두 사람의 손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의 승자는 의외로 마크롱이었다. "트럼프가 먼저 손을 풀려고 시도했지만 마크롱이 놓아주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후 트럼프의 손등에 커다란 마크롱의 엄지손가락 자국이 찍혀 있는 것이 사진으로 박제되었다. 나이 먹은 유치한 싸움도 아니고, 세상에나...
 
혁명가는 총, 정치인은 악수
 
악수의 기원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을 빼 들고 적의를 표현하던 그 시대에,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을 때,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다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또 잡은 팔을 흔드는 이유는 맞잡은 손의 소매 부분에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의미란다.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에는 악수하지는 않았다. 그저 옆에 가서 말을 거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어떻게 악수하는지,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지, 손을 어느 정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잡는 동안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상대방과 나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계산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가 처음부터 “악수는 사람과 한다”, 라면서 국민의힘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이유를 기자들이 자꾸 물었다. 필자는 정 대표의 ‘시그널’이라고 해석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당원들은 온전히 건전한 야당 대표를 선출하라는 것, 윤석열의 12.3 내란을 반대하고, 그런 내란을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에 찬성하는 후보를 당대표로 뽑으라고 꾸준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야 악수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했다. 몇몇 기자는 필자의 멘트를 기사로 썼다.
 
혁명가는 ‘총’이면 충분한 무기가 되지만, 정치인은 ‘악수’를 통해 더 많은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무기다. 더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 나와, 더 많은 표로 대의(代議)할 이를 선택을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의석과 권력(권한)을 갖는 것이 목표다.
 
냉정하게 말해서, 어린 시절처럼 악수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혁명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 총 대신 제대로 된 악수를 시작하는 시대가 되길 기원한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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