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양'영'화]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홍콩 여배우 서기의 자전적 스토리

  • 서기 감독의 첫 데뷔작 영화 '소녀'

  • 유년시절 가정폭력 상처를 영화화

  • 부산영화제 감독상… 본토 흥행은 '쓴맛'

영화 소녀 포스터
영화 '소녀' 포스터

대만과 홍콩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공한 여배우 수치(舒淇, 서기)가 영화감독으로 관객에게 돌아왔다.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 '소녀(중국명:女孩, 영문명 Girl)' 개봉과 함께 말이다. 지난 1일 중국 대륙서 개봉한 영화 소녀는 수치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이야기로,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속에서 홀로 슬픔을 딛고 일어난 소녀의 참담한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올해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는 지난 9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감성적인 색감과 밀도 있는 서사, 수려한 연출력으로 최고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1988년 잿빛 스모그로 뒤덮인 대만 항구 도시 지룽이다. 산업화로 사회가 급변하던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 '린샤오리(바이샤오잉 분)'는 술에 취해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로이 추 분)와 침묵으로 견뎌내는 어머니(9m88 분) 사이에서 불안하게 성장한다.

방안의 조그만 간이 옷장만이 샤오리의 유일한 은신처. 만취한 아버지가 집안 물건을 부수고 어머니를 때리면, 그는 밤새 옷장 안에서 덜덜 떨다가 잠이 든다. 그렇게 폭력에 짓눌려 외로움과 두려움에 갇혀 있던 샤오리는 발랄하고 명랑한 전학생 리리(린핀퉁 분)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는데.

영화내내 어둡고 쓸쓸한 샤오리의 표정은 가정폭력의 그늘 아래 유년시절을 보냈던 수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사춘기 시절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수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을 나와 홍콩으로 건너가 16살 어린 나이에 모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술 취해 돌아오는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옷장으로 몸을 숨기고,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뺨을 때리며 남편의 폭력에 대한 분풀이를 쏟아내고.... 수치는 영화 속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샤오리의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적 실제로 경험했던 이야기라고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샤오리가 아버지에게 직접 학대 당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 술 취한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 철문을 열고 자물쇠를 따는 소리, 샤오리가 옷장에 숨어 지퍼를 올리며 벌벌 떠는 모습, 샤오리의 꿈속에서 아버지의 검은 손이 뱀처럼 얼굴을 휘감는 장면 만으로도 관객들은 샤오리의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유년시절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고통은 평생 치유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치는 영화를 통해 사랑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기 위해, 또 이 세상의 상처 받은 소녀들이 자신처럼 상처를 용기있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화 제작 동기를 밝혔다. 

특히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로 유명한 허우샤오셴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허우 감독은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등 영화에 수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그녀를 국제적인 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해준 은인이다. 소녀라는 영화도 허우 감독의 제안으로 수치가 용기를 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고 한다. 

글로벌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는 "영화는 가정 폭력과 가난한 환경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1980년대 대만의 기후와 분위기까지 생생히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11월 1일 중국 대륙서 개봉한 영화는 닷새간 박스오피스 수입이 300만 위안(약 6억원)을 간신히 넘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서 여성 감독이 제작한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잇달아 흥행한 가운데 수치의 영화가 식상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스토리 전개나 결말이 빈약하다”, “감정이 너무 무거워서 지친다”는 등의 비판도 받았다. 

이를 놓고 중국의 한 누리꾼이 중국 영화평론 사이트 더우반에 올린 평론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시절 힘들었던 한 여성이 중년이 돼서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용기를 갖게 됐다. 이를 어떻게 ‘또 하나의 여성 영화’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가. 일각에선 이 영화는 고통만 있을 뿐, 고통에 대한 저항은 없다고 말하는데, 수치가 영화제에서 전 세계에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야말로 이 말에 대한 스크린 밖에서의 최고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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