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조은석 특별검사팀 수사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 법원이 혐의보다는 법적 평가의 여지를 이유로 들면서 특검은 영장 재청구 여부와 다른 국무위원 수사 전략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중요한 사실관계와 피의자의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에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어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의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방어권 행사를 넘어선 증거인멸 우려나 도주 가능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듣고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했으며, 개의에 필요한 정족수만 맞춘 채 합법성 외관을 씌우는 데 관여했다고 본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6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한 전 총리의 행위를 ‘합법 외피’ 제공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박지영 특검보는 28일 브리핑에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법의 엄중함을 통해 다시는 이런 역사적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부 논의를 거쳐 재청구 여부를 포함한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은 이번 결정에도 수사 동력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박 특검보는 “과거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국민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책임 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기각 결정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 다른 주요 인물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직후 법무부 실·국장 회의에서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출국금지팀 구성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이 혐의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적용을 검토 중이다. 최 전 부총리는 ‘계엄 쪽지’ 관련 위증 의혹 대상이다.
한 전 총리 영장 기각으로 핵심 국무위원에 대한 신병 확보에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추가 물증 확보 없이 재청구에 나설 경우 동일 사유로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법원이 ‘혐의 성립 불가’가 아닌 ‘입증 부족’을 지적한 만큼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물증과 진술 확보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검은 영장 재청구와 불구속 기소를 모두 열어둔 상태다. 이번 영장에 포함되지 않은 계엄 직후 한국예술종합학교 폐쇄 지시 의혹 등을 보강 수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박 특검보는 “중요 사실관계는 인정된 만큼 명확한 법적 평가가 필요하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조만간 내부 회의를 열어 수사 방향과 영장 재청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박 특검보는 “수사 차질은 없을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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