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8월 25일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앞에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다. 평화적으로 시작된 집회는 경찰과 충돌하면서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며 도심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후 다른 주요 도시로 확대된 시위는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어서 몇몇 사망자가 발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으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시위를 촉발한 요인은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주거 수당이었다. 8월 중순 매월 5000만 루피아(약 430만원)의 주거 수당이 국회의원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일반 노동자의 최저임금 중간값이 350만 루피아(약 30만원)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이보다 15배나 많은 금액이 주거 보조비로 지급된다는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고 이를 시위로 표출했다.
주거 수당 논란은 국회의원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의정 활동 수행에 있어 세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어떤 의원이 개진하자 다른 당 소속 의원이 자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주거 보조비가 최근 추가되어 매월 1억 루피아 이상을 수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4선 의원이라는 경력을 가진 인물이 이같이 언급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자신의 청렴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고,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이 발언은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가 자신의 세비를 일급으로 환산해 매일 300만 루피아를 받는다고 말함으로써 국회의원 일당이 일반 노동자 월급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환기시켰다.
‘일당 300만 루피아’ ‘주거 수당 5000만 루피아’ ‘월급 1억 루피아’라는 표현은 곧바로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국회의원 세비의 과도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직관적 숫자가 가진 힘으로 인해 이 문제는 곧바로 소셜 미디어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할 때 국회의원들이 침묵하거나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회의장을 비롯한 일부 의원이 주거 수당의 정당성을 항변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태가 악화했다.
국회의장은 주거 수당이 국회의원 관사 제도 폐지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제공되던 관사가 사라졌으니 이에 상응하는 수당 지급이 합리적이라는 논리였다. 나아가 그녀는 관사 관리 비용과 비교할 때 주거 수당이 예산상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주거 수당이 과거 관사 관리 명목으로 지급되던 수당보다 약 20배 높은 수준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런 해명은 대중의 반감을 높였다. 생계를 위해 교통지옥을 뚫고 자카르타로 출근해야 하고, 협소한 공간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반인의 사정을 국회의원이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국회의원의 발언은 자신들을 일반 시민과 다른 특별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특권 의식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비판의 초점은 곧 세비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애초 1억 루피아 수준이라 알려진 세비가 실제로는 2억 루피아에 달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세비를 구성하는 수당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세비 중 흥미로운 항목은 기본급이었다. 그 규모는 420만 루피아(약 36만원)에 불과하며 지난 20여 년간 변동이 없었다. 이는 국회의원이 봉사직 자리임을 강조할 때 활용하는 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급을 훨씬 뛰어넘는 여러 수당이 존재했고, 그중 상당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월 1500만 루피아(약 130만원) 규모의 ‘커뮤니케이션 수당’은 용도가 불확실했다. 국회 관계자는 이를 국회의원이 각계 인사와 소통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해명했으나 그리 설득력 있지 않았다. 이 밖에도 ‘명예 수당’ ‘감독 기능 제고 수당’ 등 목적이 모호한 항목이 다수 존재했고 ‘전기료 수당’처럼 필요성이 없는 항목도 있었다. ‘소득세 보전 수당’은 국회의원이 실질적으로 세비에 대한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세부 항목이 공개될수록 비판은 거세졌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과 유튜브 영상이 유포되었고 여기에 수백에서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리며 비판적 여론을 형성했다. 네티즌들은 각종 수당의 불합리성을 분석하거나 풍자와 빈정거림을 통해 문제를 희화화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자 시위를 통해 정치권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았다.
주거 수당 반대 집회는 강력한 조직 기반이나 동원 능력을 갖춘 단체에 의해 주도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민중 혁명’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집단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참여를 독려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조직화 수준이 높은 단체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소규모 자생 집단이 ‘국회 해산’ ‘수당 철폐’와 같은 해시태그를 활용하여 참여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대중 동원이 이루어졌다.
조직적 기반 없이 시작했음에도 청소년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중이 집결했다. 시위 이튿날에는 집회 참가자 수가 축소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며칠 뒤 진압 경찰의 차에 치여 배달 기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사그라져가던 불씨가 재점화되었다. 대규모 시위가 다른 도시로 확산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관공서와 도심지 건물을 방화하고 약탈하는 폭동으로 전화되기도 했다.
시위가 확대되자 정부는 몇몇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주거 수당 철폐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유화책과 함께 프라보워 대통령이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함으로써 공권력을 통한 질서 회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조치를 통해 혼란 상황이 신속히 정리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이는 측면은 시위를 통한 대중의 불만 표출이 정치 변혁을 밀어붙일 만한 구조적 힘으로 발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세비가 이번에 처음 폭로된 문제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국회의원의 고액 세비는 선거철마다 반복적으로 보도되는 소재였다. 세비의 세부 항목 또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정보였다. 따라서 주거 수당과 결부되면서 폭발성 높은 이슈로 전환되었을 뿐이며 고액 세비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이처럼 이 문제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데에는 인도네시아의 정치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여 년간 제도적 차원에서 민주화가 지속되었음에도 인도네시아 정치는 사실상 집권당 주도로 움직였으며 야당 세력의 견제 기능은 미약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회의원들이 세비와 같이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개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치권 내부의 자정 능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잠재적 견제 세력으로 기대할 수 있는 주체는 시민사회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정치 담론이나 제도 개혁에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할 만큼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이때 대안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세력은 이슬람 조직인데, 특히 이슬람 단체 두 곳은 각기 수천만 명의 지지자를 기반으로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럼에도 이들 단체는 정치권과 협력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정치 개혁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즉흥적이고 비조직적으로 진행되는 대중 집회였다. 광범위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이런 움직임이 의미 있는 변화를 창출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게다가 시위나 폭동이 응축된 분노를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일회성 해소의 장으로 기능함으로써 그 종료와 함께 이슈를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5000만 루피아가 일반 대중에게 갖는 의미를 고려하지 못한 채 주거 수당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정치 엘리트의 특권 의식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반전시킬 만한 시민사회의 역량이 쉽게 성장할 수 없고, 분노의 일회적 표출이 제도적 변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은 인도네시아의 정치 변화를 어디에서부터 모색해야 할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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