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9000억달러 국부펀드, 성장률 8% 꿈 인도네시아 경제 구할까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7월 16일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자신이 프라보워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해 성사시킨 중요한 합의라고 자평했다. 트럼프와 통화하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프라보워 역시 매우 유쾌한 대화였다고 밝히며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양국 정상 모두 협상 결과에 만족을 표했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미묘한 온도 차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이번 협상이 미국을 위한 최상의 결과이며, 2억8000만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시장에 대한 완전하고 전면적인 접근이 보장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반면 프라보워에게서는 다소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협상 결과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인도네시아에 처음 부과한 32% 관세율을 19%로 인하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미국산 상품에 대해 무관세 수입을 허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계의 숙원이던 비관세 장벽 다수가 철폐되었고, 인도네시아는 2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물품 구매를 약속했다.
19% 대 0%라는 뚜렷한 불균형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성공적인 협상이라 주장하는 근거를 의문시하도록 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의 제기되지 않는 정치권에서도 이번 협정에 대한 적절성을 두고 회의론이 제기되었으며, 언론 보도 또한 기업인이 체감하는 측면이 32%에서 19%로 인하한 것보다 0%에서 19%로 인상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이 발표된 직후부터 빠르게 협상에 착수했고, 관세율 인하를 위한 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았다. 당시 제안되었던 내용에 더해 관세 철폐와 항공기 구매 등 추가 양보안이 최종 협상안에 포함되었으나 인도네시아가 실질적으로 얻은 성과는 관세율 13% 인하에 그쳤다. 프라보워 정부는 인도네시아보다 먼저 협상을 마무리한 베트남의 최종 관세율이 20%라는 점을 들어 위안을 삼았지만 베트남에 부과된 최초 관세율이 46%였기에 인하 폭은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컸다.
인도네시아에 그리 유리해 보이지 않는 협상안을 프라보워가 서둘러 수용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가 강조한 측면 중 하나는 노동집약적 산업의 수출 감소 방지였는데, 이 발언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절박함이 일정 부분 드러난다.
2024년 10월 프라보워 임기 시작 후 인도네시아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2025년 1분기 성장률은 4.87%로 2024년 연간 성장률 5.03%보다 소폭 낮은 수준이다. 최근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 둔화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경제가 강한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4.8%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낙관론과 달리 미국과의 다소 성급해 보이는 관세 협정 체결이 보여주듯 경제성장에 대한 프라보워의 태도에서는 일정한 조급함이 감지된다. 이는 그가 대선 당시부터 줄곧 강조해 온 8% 성장 목표와 연관된다. 프라보워는 이 목표를 5년 내에 달성하리라 공언해 왔는데 이를 위해서는 집권 첫해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요구된다. 따라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불균형한 대미 협정 체결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8%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인프라 건설과 자원 개발이 거론되었다. 이 정책은 지난 정권에서도 추진되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 평균 성장률이 5% 내외에 머물렀음을 고려할 때 이를 뛰어넘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프라보워 정부가 내놓은 또 다른 성장 전략은 무상급식 정책이다. 약 8000만명에 달하는 학생과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이 정책은 저소득층 복지 실현을 넘어 내수 진작과 중소기업 활성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실제 성장률 제고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며,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만큼 재정 건전성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라보워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국부펀드 설립을 선택했다. ‘다난타라(Danantara)’로 명명된 이 펀드는 7개 국영기업의 배당금, 국가 효율성 예산, 기존 국부펀드 자산 등을 기반으로 200억 달러 규모로 출범했으며 장기적으로 운용 자산을 9000억 달러(약 1260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국부펀드의 초기 투자 대상으로는 광물 개발 및 정·제련 산업, 인공지능, 정유, 재생에너지, 식품 등 20여 개 분야가 선정되었다. 단순한 투자 기금 역할을 넘어 다난타라는 국영기업의 관리 체계를 개편하고,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기능도 함께 수행하게 된다.
8%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국부펀드를 활용하려는 전략은 기존 정책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시도로 평가된다. 계획대로 국부펀드가 운영되면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국영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향상해 추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수익이 국부펀드를 통해 다시 생산적 분야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실현된다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고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전망과 달리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점은 다난타라의 자본조달 구조이다. 노르웨이, 중동 국가, 중국 등 국부펀드가 원자재 수출 이익이나 외환보유액 초과분 등 안정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한 데 반해 다난타라의 주요 재원은 국영기업의 자산과 그 배당금이다. 기존에 이 배당금은 정부 예산에 편입되어 사용되었으며, 2024년 기준으로 전체 예산에서 약 3%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 재원을 국부펀드로 전환하면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는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국영기업의 배당금만으로는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외자 유치나 자산 유동화를 통해 부족분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자산 유동화가 사실상 은행 대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식이 국부펀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다음으로 문제시되는 측면은 국부펀드의 지배구조이다. 펀드 운용의 최고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으며, 장관급 관료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자산 운용은 대통령이 임명한 민간인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체계는 의사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펀드 운용이 좌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부정적 시각으로 인해 다난타라가 공식 출범한 직후 펀드에 포함된 국영기업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자카르타 주식시장이 7% 이상 하락한 바 있다.
최근 국부펀드의 투자 대상으로 국영 항공사 ‘가루다 인도네시아’가 선정된 점 역시 이러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 항공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법정 관리에 들어갔으며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려 왔다. 정부는 이번 투자의 목표가 보유 항공기 확대를 통한 경쟁력 제고라고 밝혔지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항공기 구매가 주요 협상 카드로 활용된 상황을 고려하면 정치적 이해가 이번 투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난타라가 향후 인도네시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이웃 국가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국부펀드 사례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싱가포르 ‘테마섹(Temasek)’은 1974년 국영기업 지분을 기반으로 설립된 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부펀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년간 테마섹은 연평균 6%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운용 자산 규모도 약 2.5배 증가해 400억 달러에 달한다. 수익률 자체가 극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테마섹은 높은 투명성, 지속 가능성, 운영 효율성 등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연기금 및 국부펀드 분석기관인 ‘글로벌 SWF’의 2024년 연례 평가에서 테마섹은 뉴질랜드, 아일랜드 국부펀드와 함께 최우수 펀드로 선정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정반대 사례를 보여준다. 2009년 집권한 나집 라작 총리는 경제 개발 가속화를 명분으로 13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출범시켰다. 총리가 펀드의 최고 관리자로 나서면서 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한동안 외자 유입과 투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2015년 지급보증 의무 불이행을 계기로 자금 유용 의혹이 불거졌다. 2018년 정권 교체 후 나집 총리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명품 가방 수백 개와 보석류 수천 점이 발견되어 큰 충격을 안겼다. 조사 결과 유용된 자금 규모는 무려 45억 달러에 달했으며 국부펀드는 100억 달러 이상 손실을 기록한 끝에 파산하고 말았다.
다난타라가 테마섹처럼 안정적인 성장의 발판이 될지, 아니면 말레이시아 사례처럼 부패의 도구로 전락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도네시아 정치에 만연한 부정부패, 프라보워 정권을 견제할 정치 세력의 부재, 그리고 국부펀드 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 등은 우려의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도록 한다.
국부펀드 운영 규정에는 선의로 행동했다면 손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경영진에게 묻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면책조항이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가능케 할 제도적 안전장치로 작동할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할 책임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지는 향후 8% 성장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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