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곧잘 한국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일컫는다. 높아진 한국의 경제 위상을 내세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좀 씁쓸하다. 한국이 10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작년에는 12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이나 올해 연말 기준으로 다시 두세 계단 더 떨어져 14위 혹은 15위로 밀려날 전망이 확실하다. 신흥 경제 강국 인도나 브라질에는 물론 멕시코·호주·스페인에도 앞자리를 양보해야 할 형편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올라가기보다는 내려올 가능성이 더 농후해 보인다. 자칫하다가는 2030년 전후에는 우리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터키에까지 뒤처져 20위권에 근접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PWC나 골드만삭스 등 세계 유수 경제 싱크탱크들이 예상한 전망치보다 한국의 GDP 순위는 훨씬 빠르게 후퇴하는 중이다. 이들은 2050년 20위 전후 2075년 25위 전후로 예측했지만, 현재 진행 추이를 보면 떨어지는 속도가 더 가파르다. 그만큼 잠재성장률 등 성장 동력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 후발 개도국의 거센 추격으로 경제의 젖줄인 제조업과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어 저성장의 터널을 벗어나는 것이 난공불락처럼 보인다. 10위권에 재진입하려면 연평균 5~6%씩 성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생산성 향상 등 경제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이 시급하지만, 아직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현상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분별력이 떨어진다. 한국이 이제 더는 경제 우등생이 아니고 열등생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돋보인다. 최근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3.2%로 올렸다. 경쟁 상대인 미국이나 유로존, 심지어 일본마저 모두 성장률을 높였으나 한국은 0%대(0.8→0.9%)를 유지했다. 대만은 3.7%에서 무려 5.3%로 올라가 최우등생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發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해외 시장에 대한 중국산의 무차별 공세에 한국 경제가 가장 부정적인 직격탄을 맞고 있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나 다름이 아니다. 유사한 처지에 있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낮은 경제 성적표를 받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주소다.
30여 년 전 아시아 신흥국 고도성장 시절 도토리 키재기를 하던 대만과의 경쟁 구도 변화를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성장 방식에 있어 한국은 대기업, 대만은 중소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책적 차이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절대적 우세를 보이면서 대만을 완벽하게 따돌렸다고 자만에 차 있기도 했다. 하지만 반도체 파운드리 최강자 TSMC를 필두로 대·중소 기업의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한 대만 제조업의 부활이 경제 성장률에서 한국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이에는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데도 경제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지원의 일관성, 인재 중시 등에서 기인한다. 중국의 끊임없는 위협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 등 우리와 유사한 입지에 놓여 있는 대만이 만들어가고 있는 신화다. 연말에는 22년 만에 대만의 1인당 GDP가 4만 불을 넘어서 22년 만에 한국을 능가할 전망이다.
난제 극복 우선순위 실종, 편중된 정책 남발로 균형적 접근 실종
이러한 냉엄한 현실 진단을 외면하고서 한국 경제의 진로를 찾는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진배없다. 남들과의 격차가 자꾸 더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듯이 명명백백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아까운 시간만 계속 흘려보내고 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나 이에 참가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 집단의 면면을 보면 위기의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곁가지를 건드리면서 시급한 현안들이 지속해서 뒷전으로 밀린다. 경쟁국들이 가진 큰 그림이 없어서 지엽적인 문제들만 건드리고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공회전을 거듭한다.
정주행하지 못하고 역주행을 하는 국가들에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개혁이 실종하고 정치적 불안이 가중된다. 파멸의 고리가 형성되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한국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한국 경제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차갑게 식고 있는 것도 한국이 이 범주에 속하고 있는 국가로 분류되고 있어서 그렇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경제 전쟁은 미래 산업에 대한 국가 대항전이라고 과언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기업은 경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는데도 정부의 경쟁력이나 사회 전반의 인식 수준이 글로벌 기준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열세이다. 첨단산업이나 인재에 대한 시야가 좁고 천박한 자본주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중한 난제를 극복하고 제대로 도전을 하려면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은 균형적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의사, 변호사 못지않게 기업인이나 엔지니어들이 더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사회적 분위기 일신이 필요하다. 노동의 가치와 시장의 왜곡을 시정해야 한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2025년 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부자유 점수가 56.4로 184개국 중 100위에 그치고 있다니 놀랄만하다. 이런 데도 노동시장은 이기주의와 대중 영합주의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다. 그리고 급변하는 글로벌 질서에서 어떻게 제대로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새우등 타령만 하고 움츠려 있을 것인가. 판을 바꾸지 않으면 지방 경제는 더 붕괴하고 캄보디아發 유혹에 넘어가는 청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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