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정문에는 청동 황소상이 있다. 증시 호황을 뜻하는 '불(Bull) 마켓'의 염원을 담은 상징물이다. 올해 황소상의 기운은 유독 힘차 보인다. 6월 이후 코스피는 '불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기록도 쏟아지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9월 10일 사상 최고점 경신, 10월 27일 사상 첫 4000포인트 돌파 기념행사를 열었다.
아주경제는 지난 3일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만나 K-증시 경쟁력 강화방안과 미래상을 들어봤다. 정 이사장은 "두려울 정도로 무서운 상승세"라면서도 "정부의 의지, 산업 구조전환이 이어진다면 코스피는 5000을 넘어 6000 이상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코스피 시장이 뜨겁다. 앞으로 전망은.
"얼마 전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만났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내년 5500포인트 이상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코스피, 코스닥 시장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증시가 좋지만 반도체 등 특정섹터 쏠림현상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AI 버블 등 향후 증시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 기업이 경쟁적으로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AI시대 주도권도 결국 2~3개 기업으로 압축될 것이다. 그러면 과잉투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아직 버블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2000년대 IT버블 때처럼 증시가 경착륙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코스피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난해 2월 이사장 취임 직후 한국의 자본시장에는 상장회사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해 2800개가량 상장기업이 있다. 미국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을 합해 5500개 정도다. GDP 기준으로 한국은 미국의 15분의 1, 시가총액 기준으로 30분의 1인데, 상장사 수는 2분의 1이다. 너무 많다. 증시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소위 진입과 퇴출의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부실 기업 퇴출을 더 강화한다는 얘기인가.
"부실 기업은 늘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 된다. 그래서 정부와 거래소가 한계기업 퇴출 조건을 300억원으로 강화하고, 상장폐지 심의 단계를 2심제로 축소하는 등 절차적 허들을 강화하는 중이다. 회계상 의견거절을 두 번 받으면 곧바로 퇴출시키는 등을 포함해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다."
-진입과 퇴출의 선순환이란 뭘 의미하는 건가.
"한국은 해외 지향적인 기업 활동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벤처 육성'이 산업 구조 전환의 핵심이다. 기술력 있는 벤처들이 증시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6~7년의 기회를 줬는데도 수익모델을 못 만들어내면 퇴출하는 게 당연하다. 미국도 상장회사보다 시장으로부터 나가는 회사가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닥은 잘 작동하고 있나.
"현재 코스닥 시장에는 1800여개 기업이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투자자들이 제대로 아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소문에 사고 소문에 파는 경우가 대다수일 게다. 이건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시장 구조개편의 방향성은 뭔가.
"코스닥과 코넥스 상황을 다 감안해 시장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벤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코스닥이 역할을 해왔는데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의 시장 정립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시장 신뢰회복을 위한 또 다른 노력은?
"정부와 거래소가 불공정 거래 합동대응단을 만들어 '1호', '2호' 등을 찾아내 발표했다. 불공정 거래는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일반 투자자들의 재산적인 손해를 초래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라도 작전 세력, 불공정 거래 세력을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 앞으로도 감시를 강화할 것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변화가 요새 뚜렷하다.
"그렇다. 과거에는 개별 시장 간 경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미국 주식거래만 봐도 애프터마켓에서 80%가 해외 투자자인데, 이 중 절반이 한국 투자자다. 채권담보부증권(CBO) 등 파생선물 옵션 거래시장의 상당수도 한국 투자자다. 국경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거래소도 이제 글로벌 경쟁의 시대로 가고 있다."
-거래시간이나 표준결제시스템에도 변화를 줄 건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24시간 거래다.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청산과 관련해서도, 현재 우리는 T+2(거래일로부터 2영업일 후에 주식 매매에 대한 결제(청산)가 완료되는 시스템)를 채택하고 있는데 미국, 캐나다 등은 T+1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우리도 그에 맞춰가야 할 것이다."
-주식 토큰화(스톡 토크나이제이션)도 새로운 변화다.
"맞다. 대표적으로 미국 온라인증권사 로빈후드가 이를 진행 중이다. 스톡 토크나이제이션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T+2 결제 주기를 T+0(즉시 결제) 또는 실시간 결제로 단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거래를 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에 가상화폐나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도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예탁 기능, 청산 결제 구조가 필요 없어진다. 결국 미래에는 전통적 거래소가 갖고 있는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에 대한 방어벽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소의 역할이 축소되는 게 아닌가.
"주요 거래소에 유동성이 몰리게 되면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유리하게 거래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 있는 주요 기업들이 굳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할 필요성도 사라질 수 있다. 차라리 해외에 상장을 시키는 경우도 더 많아질 수 있다. 20년 후에 한국의 KRX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는 정말 불투명한 상황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