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오름이다. 나지막한 언덕이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의 DDP 지붕 위를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가을 제주의 오름에 오른 듯 바쁜 일상에 짓눌렸던 숨이 탁 트인다. DDP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는 2014년 방한 당시 “DDP는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됐다.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는 것만 봐도, 새로운 지형을 창조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자하 하디드의 생각처럼 DDP는 서울의 지형으로,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시민들이 DDP를 직접 걷고, 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마련했다. 유려한 곡선의 DDP 지붕 위를 거닐며 동대문 일대를 한눈에 조망하는 ‘루프탑 투어’를 비롯해 365일 상설로 운영되는 미디어아트쇼 ‘드림 인 라이트’를 통해 시민들은 서울의 하늘을 걷고, 서울의 밤을 누릴 수 있다.
DDP 위에 오르다
지난 20일 DDP 루프탑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이 감돌았다. 이날 투어에 참여한 시민 15명은 간단한 투어 참여 동의서를 작성하고, 헬멧과 투어복을 착용한 후 안전수칙이 담긴 짧은 동영상을 봤다. “앞사람과 1m 간격을 유지하고, 미끄럼 방지 보행라인을 따라 천천히 걸어주세요”라는 안전요원의 안내를 속으로 되새기며, 지붕 위로 서서히 올랐다.루프탑에 오르자, 청명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긴장감이 단번에 사라졌다. 자하 하디드가 DDP를 '지형'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유려한 곡선의 DDP는 아주 오래전 화산활동 끝에 솟아난 오름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남산, 을지로, 낙산, 동대문패션타워, 흥인지문, 신당동으로 이뤄진 동대문의 풍경과 하나로 연결됐다.
DDP 설계에는 잔디언덕에서 루프탑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시공 과정에서 일부 층고가 높아지면서 자하 하디드가 그렸던 길은 실현되지 못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미완의 산책길을 열기 위해 지난해 DDP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붕을 개방하는 ‘DDP 루프탑 투어’를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시범 운영 당시 만족도와 재참여 의사 모두 94%를 기록할 정도로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은 데 따라, 11월 7일부터~23일까지 DDP 루프탑 전 구간 652m를 개방했다. ‘서울을 유영하다(Seoul Drifting)’란 주제 하에 ‘디자인-역사-파노라마-미래’로 이어지는 4개 구간에 서울의 이야기를 깃들인 전문 해설까지 더했다.
특히 루프탑 투어는 DDP를 가장 근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DDP 외관을 덮은 4만5133장의 패널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형태가 모두 다르다. 규격, 곡률, 크기가 전부 제각각이다. 지상에서 DDP를 올려다볼 때는 육안으로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붕 위에서 DDP를 보면 사각형 패널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기울기도, 색깔도, 크기도 다른 사각형들이 유려한 곡선을 만들듯, 제각각의 사람과 풍경이 서울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날 투어에 참여한 곽내인씨(34)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근무하는 그는 팀 워크숍 일환으로 DDP 지붕에 올랐다. “이번 워크숍 주제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기'예요. 곡선으로 이뤄진 건물 위에서 서울을 보니 정말 새롭네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가을의 마지막 정취도 만끽하고요.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 얘기만 나누던 팀원들과 이렇게 바깥 바람을 쐬니,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까지 나누게 되네요.”
관광 가이드 신희지씨(31)는 업무차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투어에 참여했다. “최근 케이(K)-팝 등 케이-콘텐츠 인기로 한국을 두세 번씩 찾는 외국 관광객이 많아졌어요. 이분들은 일반적인 관광보다 루프탑 투어처럼 특별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원하거든요. 다만, 외국인 수요를 감안하면 원활한 예약을 위해 회차가 늘어나야 할 것 같아요."
365일 빛난다...한파에도 발걸음 멈춰
222m의 DDP 외벽은 365일 빛난다. 서울디자인재단은 매일 오후 6시~10시까지 DDP 일대를 빛으로 물들이는 ‘드림 인 라이트(Dream in Light)’를 선보인다. 서울 마스코트 해치가 DDP 외벽에 등장해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고, 리아킴이 음악에 맞춰서 춤춘다. 외국인들이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접했을 일월오봉도와 단청을 몽환적으로 해석한 오색 빛깔 미디어아트쇼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DDP 전면, 미래로 상부, 유구전시장 앞에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상설로 전환한다.
이날 DDP 주변을 지나가던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미디어아트쇼를 구경했다. 송경숙씨(51)는 “지나가던 중 영상이 너무 화사하고 눈에 띄어서 추운 날씨임에도 걸음을 멈췄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윤희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문화본부 콘텐츠운영팀 팀장은 “DDP가 삭막하고 휑하다며, 서울라이트 DDP를 상설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파리의 에펠탑 조명쇼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파리를 찾듯, 따뜻한 조명으로 감싼 DDP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동대문을 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이 DDP에 모이면 주변 상권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드림 인 라이트는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2월 ‘서울 라이트 DDP 겨울’ 운영 기간에는 잠시 중단한 후 2026년 1월 9일부터 상설 야간 프로그램으로 지속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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