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전격 소환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수사의 핵심은 여전히 전 전 장관의 진술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담수사팀 출범 8일 만에 이뤄진 소환은 이례적으로 빠르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물증과 정황만으로는 혐의 입증의 분수령이 ‘전재수의 입’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19일 전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전 전 장관은 출석 직후 “통일교로부터 불법적인 금품을 받은 사실은 결단코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전 전 장관이 2018년 무렵 통일교 측으로부터 한일 해저터널 추진과 관련한 청탁과 함께 현금 2000만원과 10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 1점을 받았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이번 소환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배경에는 공소시효 문제가 깔려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2018년을 기준으로 하면 만료 시점이 임박해 있다. 경찰이 정치권 피의자 3명 가운데 전 전 장관을 가장 먼저 소환한 것도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다만 수사의 실체로 들어가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경찰이 제시한 혐의 구조는 ‘통일교 측의 청탁 → 금품 전달 → 정책적 영향력 행사’라는 틀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금품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는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다. 경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전 전 장관의 주거지 등에서 실물 시계를 확보하지 못한 점도 부담 요인이다.
경찰이 주목하는 핵심 단서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작성한 이른바 ‘특별보고’ 문건들이다. 2018년 9월 10일자 보고에는 ‘전재수 의원이 부산 행사에 참석해 축사했고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전 전 장관 측은 해당 날짜에 경남 의령에서 벌초 일정을 소화했다며 행사 참석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2019년 1월 7일자 ‘TM(한학자 총재) 일정 전재수 2시’라는 표현이 담긴 보고 문건이다. 윤 전 본부장은 특검 조사에서 “가평 천정궁에서 면담이 있었고 금품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문건이 실제 면담 이전에 작성됐는지, 사후 보고인지 여부를 두고도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금품으로 지목된 명품 시계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 애초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은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2점이었으나, 경찰은 불가리 시계 1점으로 혐의를 특정했다. 경찰은 통일교 천정궁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명품 구매 내역을 토대로 전달 여부를 추적 중이지만, 통일교 내부에서는 상당수 명품이 윤 전 본부장 부부의 개인 소비였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정황도 수사 대상이다. 경찰은 통일교 산하 재단이 2019년 전 전 장관 출판기념회 직후 그의 저서를 한 권당 2만원씩 500권, 총 1000만원어치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이 역시 정치자금인지, 후원 성격의 도서 구매인지에 대한 법적 평가는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수사에 부담을 주는 대목은 의혹을 촉발한 윤 전 본부장이 최근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고, 한학자 총재 역시 경찰 접견 조사에서 “전 전 장관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점이다. 핵심 참고인들의 진술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객관적 물증 없이 진술 신빙성만으로 혐의를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수사는 구조적으로 피의자의 진술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언제·어디서·무엇을·대가로’가 특정돼야 하는데, 아직은 퍼즐 조각이 흩어져 있는 상태”라며 “전 전 장관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객관적 증거, 이른바 스모킹건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사 동력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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