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환율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잇따라 비상 대응에 나섰다. 외환건전성 부담금 한시 면제, 외화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확대 등 직접 시장 개입을 제외한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정기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임시 금통위까지 소집한 것은 정책 당국 스스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인책 중심의 대응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달러를 국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 비용을 낮추고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은 시장 기능을 활용한 비교적 온건한 처방이다. 단기적인 외환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거주자의 해외 투자 확대가 최근 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서, 수급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정책 판단은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있다.
 
다만 문제는 정책의 강도와 신호 관리다. 기업과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잇단 ‘점검’과 ‘호출’, 해외 투자와 외화 운용에 대한 구두 압박은 시장에 엇갈린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외환시장의 불안이 깊어질수록 당국의 개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자금 운용까지 위축시키는 방식은 단기 효과가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크다. 환율은 행정 지시로 고정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경제의 체력과 정책 신뢰를 반영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입이 환율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내놓는다. 실제 편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면 비교적 장기 성격의 자금이 유입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며, 글로벌 금리 환경과 위험 선호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를 전제로 한 ‘버티기 전략’이 환율 정책의 중심이 돼서는 곤란하다. 기대는 정책이 될 수 없고, 희망은 전략을 대신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원화 약세의 배경에 있다. 확장적 재정 기조와 통화량 증가,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 반복되는 금융시장 불안, 일본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엔화 흐름 변화까지 겹치며 원화는 구조적으로 약해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도 자본수지에서 이를 상회하는 유출이 이어지는 현실은 환율 문제를 단순히 ‘달러 부족’으로만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방어선이 아니라 일관된 안정 로드맵이다. 외환 규제 완화와 유인책이 언제까지, 어떤 조건에서 정상화될 것인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환율 변동의 근본 원인인 성장 잠재력, 자본시장 매력, 정책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환율은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외환시장 안정의 출발점은 통제가 아니라 원칙이며, 그 원칙의 핵심은 신뢰다. 기본과 원칙, 상식에 기반한 일관된 정책 신호가 전제되지 않은 채 개입의 수위만 높이는 대응으로는 시장을 설득하기 어렵다. 정책 당국은 지금의 위기 인식이 단기 처방 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냉정한 진단과 균형 잡힌 메시지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진아주경제 DB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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