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체코의 얀 후스(Jan Hus, 1369 ~ 1415)나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0 ~ 1384)와 같은 선지자들이 교회와 교황청의 부패를 뼈아프게 비판했다. 이들은 화형당하거나 훗날 부관참시를 당할 정도로 제도권을 흔들었다. 그러나 전 유럽에 광범위한 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인쇄술이 없었던 그 시대에는 그들의 생각이 필사, 구전, 지역 설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널리 퍼지지 않았다. 만약 인쇄술이 없었다면 루터의 95개 반박문도, 로마의 부패상에 대한 그의 목격담도 겨우 비텐베르크 인근 지역에 알려지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다행히 루터 시절에는 이미 인쇄술이 있었다. 그는 이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의 저작물들은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인쇄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루터는 인쇄술이 만들어 낸 최초의 대중 운동 지도자였다. 말하자면 인쇄술은 오늘날 인터넷과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근대 정보혁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그 결과물이었다.
먀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 ~ 1980)은 1964년 ‘매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매체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가’하는 문제보다 ‘매체 그 자체가 이미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사건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루터가 교회를 비판하는 95개 항 반박문을 성당 대문에 붙였을 때 즉시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루터의 반박문은 교수와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논쟁 주제였다. 따라서 라틴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이것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쇄되었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대량으로 인쇄되어 2주 만에 전 독일에 퍼졌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까지 두 달이면 충분했다. 이는 루터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돈 냄새를 맡은 인쇄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복제한 뒤 유통시켰다. 루터도 인쇄물이라는 매체의 효과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루터는 종교 개혁가인 동시에 출판 혁명가였다.
루터는 출판물의 대중시장을 처음으로 연 장본인이었다.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루터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였다. 출판업자들은 경쟁적으로 루터의 글을 찍어내면서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종교개혁은 출판 혁명이기도 했다. 루터는 출판업계에서 금광과 비유되었다. 당시 인세라는 것이 없어서 루터에게 그 수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또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져 자신의 신학 저작에 대해 금전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개혁 운동이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것은 오로지 뉴 미디어인 인쇄술 덕분이었다. 인쇄술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쇄술이 없었다면 루터는 그저 변방의 반체제 인사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 ~ 1468)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기 전 모든 책은 손으로 베껴 쓰거나 문제 많고 비효율적인 목판인쇄를 썼다. 15세기 들어서면서 수도원이나 대학 또는 귀족 가문에서 책의 수요가 많았다. 필사본 책 하나의 제작에 수개월에서 1년씩 걸렸다. 제작 비용이 높게 발생했다. 구텐베르크는 대대로 금속 세공업자인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웠다. 그가 활동하던 라인강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상업 중심지였다. 법률 문서, 상업 장부, 대학 교재 등의 수요가 많았다. 구텐베르크는 이 구조적 수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기술과 사업 감각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벤처 창업가였다. 금속활자는 초기 제작 비용은 많이 들지만 표준화된 문서의 대량생산에는 크게 유리했다. 개별 글자를 조합해서 다양한 문서를 제작할 수 있고 오타 수정도 가능했다. 활자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쉽게 마모되지 않아 수만 번까지 인쇄가 가능했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 인쇄기 발명의 목적을 처음부터 상업화에 두었다. 그러나 인쇄기를 만든 후 거의 70년 동안 신기술을 활용할 적당한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인쇄 사업을 위해 자본을 조달하느라 빚을 졌는데 이 빚을 갚지 못해 소송에 시달렸다. 결국 자신의 기술을 투자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는 특허제도가 없어서 발명에 대해 보호받을 수가 없었다. 유럽 전역에 모방 인쇄소가 많이 등장해서 수익 창출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인쇄 기술을 사업화한 인쇄업자들에게 경제적 성공을 넘겨줘야 했다. 그는 빚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다가 생을 마감한 비운의 혁신가였다.
루터의 출판에 대한 열정
루터는 인쇄를 전략적 무기로 사용했다. 그가 쓴 쉽고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독일어로 된 짧은 소책자들은 값이 쌌다. 휴대가 가능해 농민, 노동자, 장인, 상인들까지 읽고 돌려볼 수 있었다. 루터는 책자들이 인쇄될 때 매번 일일이 지켜보며 표지디자인, 판형, 삽화, 활자체까지 개입했다. 인쇄물이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잔소리했다고 한다. 루터는 인쇄술을 통해 여론전, 정치전, 사상전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쇄 기술은 종교개혁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핵심 동력이었다.
교황청이 루터의 저술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러나 인쇄물의 확산 속도가 빨라 이미 독일 전역에 수천, 수만 부가 팔린 뒤였다. 인쇄업자들은 돈이 되니 복제판을 찍어 유럽 전역에 유통했다. 인쇄술은 교황청과 제국 권력의 정보 통제 능력을 붕괴시켰다. 종교개혁은 인쇄 혁명이 만든 첫 번째 대중 운동이었다. 종교가 성직자 중심 구조에서 평신도의 신앙과 대중 운동으로 바뀌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종교개혁이라는 메시지보다 그 운동을 유럽적 현상으로 만든 인쇄술이다. 루터는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루터가 인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인쇄가 루터를 만들었다’는 의미는 미디어 형식 자체가 역사적 변화를 이끈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의 본질은 ‘미디어 혁명’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로 근대가 시작되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유럽인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재구성되었다. 인쇄술 이후 동일한 내용의 책이 수천, 수만 권 동시에 존재했다. 정확성과 더불어 재현, 검증, 비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 과학 혁명의 본질적인 조건이었다. 인쇄술 이전의 지식은 설교나 강론 등과 같이 단체 속에서 받아들여졌다. 인쇄된 책은 ‘사적 독서’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것으로 인해 개인의 판단, 개인의 양심, 개인의 신앙, 자기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근대적 개인주의의 출발점이며 루터의 ‘만인 사제설’과도 직결된다. 또 인쇄술은 국가별 표준화된 언어를 만들어 내면서 국민국가의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면서 번역한 독일어 성경이 인쇄되어 전 독일에 확산되었다. 방언들이 사라지고 표준 독일어가 만들어졌다. 이후에는 영어 성경과 프랑스어 성경 등이 출현하였다. 이를 통해 근대 민족국가와 국민 정체성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여론이 존재할 수 없었다. 대부분 라틴어로 쓰인 문서를 대중은 읽을 수가 없었다. 정보는 성직자와 귀족이 독점하게 되고 권력은 메시지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차츰 대중의 의견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책이 동일한 형태로 유럽 전역에 뿌려지면서 신학, 과학 등에서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논쟁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로소 학문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고의 지평이 지역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근대적 유럽 문명의 탄생 조건이 되었다.
책이 많아지면서 문해율이 상승하고 학교가 증가했다. 논리적,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고 법, 정치, 경제에서 합리적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다. 문자 문화가 강화되면서 더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하게 되었다. 법은 문서화되며 더욱 명확해졌다. 계약, 금융, 회계 시스템이 정교해졌다. 이 모든 근대 경제, 근대 국가의 기술적 기반이 인쇄 문화에서 출발한다. 인쇄술은 유럽 사회의 사고 구조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 결과 근대를 실질적으로 출범시켰다. 이것을 시작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다. 그는 개신교의 탄생뿐 아니라 근대를 연 개혁가였다. 마르틴 루터 이후에 인간은 비로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마르틴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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