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두 번 오픈한 기분이었어요. 시리즈를 촬영했을 때도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극장에서 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게 기뻤고요. 시리즈에서는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 인물들의 감정들을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설명이나 설득이 더 잘 되지 않았나 싶어요."
'콘크리트 마켓'은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 단지 '황궁마켓'을 배경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이들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그린 재난 드라마다. 이재인은 극 중 황궁마켓의 질서를 뒤흔드는 의문의 지략가 '최희로'를 연기했다.
"희로는 감정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행동을 빠르게 따라가면서 몰입하는 방식으로 연기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리즈에서는 희로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세정이와의 대화도 나오고 세희와의 대화도 많이 비춰지니까요. 그래서 희로라는 캐릭터가 더 넓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시리즈에서는 태진이랑 희로가 서로 믿어가는 과정도 잘 담긴 것 같아요. 초반에는 배신도 하고 의심도 하지만 결국 다시 믿게 되는 흐름이 납득됐어요. 두 사람의 케미도 잘 보이지 않았나 싶고요."
작품 속에서 희로는 친구 세희의 죽음 이후 동생 세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 속으로 밀어 넣는 인물이다. 그 선택과 행동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는 감정으로도 읽힐 여지를 남긴다. 이재인은 당시 희로의 마음을 '친구'라는 감정에서 출발해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냥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친구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그 친구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정말 절친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재난 속에서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났을 때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남아서 동생을 지켜줬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와서 작품을 다시 보니까 다른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희로랑 세정의 관계도요. 그런데 그때 연기할 때는 저나 세정이나 그런 걸 염두에 두고 한 건 아니었어요. 나중에 보고 나서 '아, 이렇게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 같아요."
극 중 희로는 18살이고, 당시 이재인의 실제 나이 역시 18살이었다. 자신의 나이와 정확히 겹치는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에 대해 그는 지금에서야 보이는 감정과 선택들이 있다고 돌아봤다.
"지금 다시 보면 '왜 저렇게 힘을 줬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힘을 안 주는 게 더 익숙해졌고, 계획하기보다는 감으로 맡기는 쪽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희로가 똑똑한 캐릭터이고 멋있어 보이는 지점도 있었고 전략을 설명해야 하는 대사가 많았어요. 태수 무리한테도 시청자한테도 설명해야 하니까 텐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한다면 조금 더 편안한 희로를 했을 것 같긴 한데 막상 생각해보면 희로의 코어 자체는 힘을 주는 게 맞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홍경과의 호흡 역시 작품에서 중요한 축이었다. 이재인은 태진이라는 캐릭터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홍경을 연상했다고 말했다.
"현장도 여기저기 다니고 세트도 많고 감성적인 장면도 많았어요. 제가 홍경한테 '한국의 티모시 샬라메'라고 불렀거든요. 홍경의 분위기도 그렇고, 태진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초창기 느낌이 그랬어요. 태진은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역할이잖아요. 자존심은 센데 유약하고 되게 복잡한 인물이라서요. 희로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인데 태진은 누가 할까 계속 생각했어요. 그런데 티모시 샬라메 얼굴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홍경이 안 하는 태진은 솔직히 상상이 안 가요."
희로의 외형 역시 인물의 서사를 설명하는 장치였다. 그는 비주얼 설계 단계부터 희로를 '밖에서 살아온 인물'로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켓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거칠고 외롭게 보였으면 했어요. 밖에서 살아온 과정이 외모만 봐도 느껴지게요. 그래서 톤도 다운시키고, 주근깨 같은 텍스처도 주자고 했어요. 희로는 포인트 컬러도 있었어요. 황궁마켓 전체가 색감이 다운돼 있는데 희로가 노란색을 입으면 눈에 띄는 효과가 있거든요. 세정이의 꽃도 노란색이고요.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희로 파트로 갈 때마다 노란색으로 바뀌어요. 스토리를 함축한 애니메이션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그런 숨겨진 설정 찾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지난해 영화 '하이파이브', 드라마 '미지의 서울' 등 쉬지 않고 달려온 이재인은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오가며 체감한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다양한 작품을 하다 보니까 감정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극단적인 감정을 느낄 일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작품을 통해 그런 감정 표현을 해보는 게 배우로서는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으로서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도요. 특히 '하이파이브'는 저한테 되게 컸어요. 그전까지는 현장에서 '어린 애가 왔네'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고 저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거든요. 어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동등한 연기자 동료로 봐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아, 이제는 일원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이자 스태프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영화에 대한 사랑을 굳히는 순간이었고, 배우로서 크게 성장했다고 느낀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은 '잘 알아듣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감독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배우로서의 능력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말을 정말 잘 알아듣는다는 거예요.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 제가 원하는 연기, 관객이 원하는 연기를 다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라는 공간에서 배우도 하나의 미술 요소잖아요. 화면 구성의 일부니까 감독님의 영역을 충실히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초견처럼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하는 감각을 현장에서 쓰는 거죠.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그걸 바로 이해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안정감'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저한테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배우는 안정감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대치만큼 충족시켜주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만큼 좋은 연기는 없다고 생각해요. 뭘 원하는지 알고 그걸 이행하는 것. 그게 안정감이라고 생각해요."
5일 첫 방송된 tvN '스프링 피버'에서는 이재인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제가 해본 것 중에 제일 귀여운 작품이에요. 정석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고 로맨스 요소도 많아요. 캐릭터도 새침하지만 귀여운 느낌이라서 찍을 때 재밌었어요. 로맨스가 익숙한 편은 아니었는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이겨내려고 했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내가 이겨서 가져가야지'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게 캐릭터로 잘 나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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