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의 인공섬 유메시마(夢洲). 이곳은 2030년 가을 개장을 목표로 하는 초대형 복합리조트(IR), ‘오사카 MGM IR’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인근 국가의 대규모 개발 소식은 한국 관광업계에 단순한 호재를 넘어, 잠재적 위협이자 경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중·일 동북아 관광 경쟁은 이제 이미지 홍보나 쇼핑 관광을 넘어, 외래객의 체류 시간을 점유하는 ‘인프라 경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일본의 IR 시장 진입은 한국 관광 산업에 구조적인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카지노라는 강력한 캐시카우(Cash Cow)를 장착한 일본의 대형 리조트와 경쟁해야 하는 한국형 IR, 그 차별화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 오사카발(發) 신호… 10조원대 경제 효과 거론
오사카 IR 프로젝트는 규모 면에서 한국 관광 산업에 시사점을 준다. 미국 카지노 대기업 MGM 리조트와 일본 오릭스가 합작해 추진하는 이 사업은 연간 방문객 수를 2000만 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경제적 파급 효과다. 오사카부·시가 수립한 구역정비계획(Area Development Plan)에 따르면, IR 운영 단계에서 연간 약 1조1400억 엔(약 10조5000억원) 수준의 경제 파급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 단계의 효과만 1조 엔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지역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다.
국내 관광업계가 우려하는 지점은 이른바 ‘시장 중첩’이다.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비행 시간은 2시간 남짓으로, 중국과 동남아 주요 도시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동일한 ‘주말 관광권’에 속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사한 비행 거리에 압도적인 규모와 최신 시설을 갖춘 오사카 IR이 들어설 경우, 고부가가치 관광 수요가 분산되거나 일본으로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관광업계 안팎에서는 일본 IR 개장과 맞물리는 2030년을 한국 관광 전략의 성패가 가늠될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경유하던 수요가 줄어드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일본의 강점은 치밀한 ‘국가 설계’에 있다. 일본 정부는 ‘IR 정비법’을 통해 카지노 수익의 활용처와 지역 환원 구조, 중독 예방 대책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IR을 단순한 유흥 시설 유치가 아닌, 경제 활력 제고와 지방 도시 재생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다루고 있다는 방증이다.
◆ 글로벌 표준은 ‘비게임’… 승부는 콘텐츠
한국의 대응 전략은 글로벌 IR의 진화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카지노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비게임(Non-gaming) 부문이 전체 매출의 과반을 차지하며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변신했다. 카지노는 집객을 위한 수단일 뿐, 실제 부가가치는 공연과 미식, 쇼핑, 컨벤션 등에서 창출되는 ‘경험 경제’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아시아 경쟁국들도 이 모델을 따르고 있다. ‘카지노 중심’에서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 그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마카오 정부는 최근 6개 카지노 운영사와 사업권을 연장하며 총 1188억 파타카(약 19조원, 당시 환율 기준) 규모의 투자를 의무화했고, 그중 90% 이상을 비게임 분야와 해외 관광객 유치에 쓰도록 했다. ‘도박 도시’ 이미지를 탈피하고 문화·관광 도시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필리핀 역시 마닐라 베이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조성하며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 한국형 IR의 현주소… 하드웨어 경쟁력과 제도의 과제
한국 역시 시설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거리 ‘오로라’와 1만5000석 규모의 아레나를 앞세워 K-팝 팬덤과 글로벌 공연 수요를 흡수하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파라다이스시티 역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축으로 호텔·컨벤션·스파·아트 전시와 공연을 결합하며, 카지노를 집객 수단으로 활용하는 복합리조트 운영 모델을 구축해왔다.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는 대규모 호텔과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식음·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한데 묶어 도심형 IR 모델을 구현하며 외국인 관광 수요 회복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 구조 측면에서는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 국내 IR은 여전히 카지노 매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비게임 시설은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 부담으로 인해 수익성 확보에 시간이 걸린다.
이는 개별 기업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IR을 통합적 산업 생태계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부족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비게임 시설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나 제도적 유인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사업자에게만 고부가가치 창출을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 한국의 무기는 ‘스마트 기술’과 ‘K-콘텐츠’… 운영의 묘(妙) 살려야
내국인 출입 허용(오픈 카지노) 논의가 사회적 합의 문제로 정체된 상황에서, 복수의 전문가들은 한국만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 전략을 주문한다.
첫 번째는 ‘스마트 IR’이다. 한국의 앞선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해 투명하고 안전한 카지노 운영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안면인식 출입 통제, AI 기반의 과몰입 징후 조기 포착, 블록체인을 활용한 자금 흐름 투명성 확보 등은 한국이 선점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는 사행성 우려를 기술적으로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K-컬처와의 결합 고도화’다. 단순한 공연장 대관을 넘어, IR 전체를 K-콘텐츠 경험의 장으로 브랜딩하는 전략이다. 카지노와 리조트 시설이 K-팝, K-푸드, K-뷰티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경쟁국이 모방하기 힘든 한국만의 소프트 파워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동북아 관광 시장의 인프라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규모의 경쟁만으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디테일과 콘텐츠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카지노를 단순 규제 대상이 아닌 ‘관광 진흥의 핵심 파트너’로 재정립하고, ‘육성과 관리’의 균형을 맞춘 정책적 뒷받침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오사카 IR이 문을 여는 2030년, 한국 관광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현재의 전략적 설계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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