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수출 외교지만, 실질은 한국의 방산 역량과 자주국방 능력이 국제 무대에서 어느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이번 출장의 의미는 계약서 몇 장에 있지 않다. 세계가 한국 방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본질이 있다.
캐나다가 추진 중인 CPSP는 단순한 잠수함 도입 사업이 아니다. 3000톤급 디젤 잠수함 최대 12척에 30년 유지·보수·운영(MRO)을 포함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단일 방산 수출로는 사상 최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캐나다가 입찰 조건으로 내건 것은 성능이나 가격만이 아니다. 산업기술혜택(ITB), 현지 고용, 방산 공급망 통합이 핵심 평가 항목이다. ‘무기를 사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만들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선택지로 떠올랐다. 강 비서실장이 “이런 대규모 방산 사업은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특사단에 조선·방산 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에너지, 항공 분야 기업까지 동행한 것은 방산을 ‘산업 생태계 패키지’로 제시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현대차그룹의 현지 수소차 공장 검토, 대한항공의 항공 협력 논의는 잠수함을 넘어선 전략적 제안의 일부다.
이 판단은 유럽 전반의 방산 지형 변화와 맞닿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은 전후 최대 규모의 재무장 국면에 들어섰다. 국방비는 10년 전의 두 배로 늘었고, 포탄·전차·함정 등 일부 분야에서는 생산량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WSJ가 동시에 지적한 것은 유럽 방산의 구조적 한계다. 산업이 국가별로 파편화돼 있어 대량 생산과 신속한 납기에 제약이 크고, 로켓 포병, 장거리 미사일, 위성 기반 정보·정찰 등 핵심 영역에서는 여전히 공백이 존재한다.
이 공백을 메울 현실적 대안으로 한국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폴란드의 대규모 K-방산 도입은 예외가 아니라 전조다. 빠른 생산 능력, 검증된 성능, 안정적인 납기, 여기에 산업 협력까지 묶은 제안은 지금의 유럽이 가장 필요로 하는 조건이다.
특사단의 노르웨이 방문은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노르웨이는 다연장로켓 도입 사업을 추진 중이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유럽 우선주의 기조 속에서도 실전 검증과 납기 능력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분야다. 노르웨이가 한국과의 협력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이유다.
이 모든 변화는 방산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꾼다. 방산은 더 이상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다. 자주국방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기반이자, 동맹 재편기 속에서 외교적 신뢰를 쌓는 수단이며, 산업 경쟁력을 확장하는 국가 전력이다. 미국 국방부가 최근 국가방위전략(NDS)에서 한국을 “더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 속에서도 대북 억제의 주된 책임을 질 수 있는 국가”로 평가한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출국길에 언급한 “진짜 친구는 겨울에 찾아온다”는 캐나다의 속담은 이번 출장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한국이 건네는 제안은 단순한 세일즈가 아니다. 책임을 나누고, 산업을 함께 키우며, 안보를 공동으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캐나다의 계산과 노르웨이의 선택, 그리고 유럽의 재무장은 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이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K-방산은 한국의 외교·안보·경제를 동시에 지탱하는 국가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래들의 힘겨루기가 거세질수록, 준비된 새우는 오히려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지금 K-방산이 마주한 기회는 일회성 수주가 아니다. 한국이 중견 안보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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