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니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삼성 폴더블 폰을 선물받고 매우 좋아하면서 같이 셀카를 찍자고 했다. 두 정상이 자연스럽게 함께 셀카를 찍은 그 순간이야말로 이번 방한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한국-이탈리아 정상회담 1주일 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정상회담 후일담을 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이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가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은 순간을 꼽았다. 가토 대사는 “공식 외교 일정이었지만 인간적인 교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며 “정상 간 신뢰와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부연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달 오만과 일본에 이은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 국가로 한국을 찾아 17일부터 19일까지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포함, 양국 간 심층적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방한한 첫 유럽 정상으로, 이탈리아 총리로서는 19년 만에 양자 회담 목적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멜로니 총리가 딸과 함께 방한 기간 중 한국에서 비공개 생일 파티를 연 것도 소개했다. 가토 대사는 “총리의 딸이 K팝을 좋아해 한국 문화에 친숙하다”며 “총리가 한국을 공적인 일정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머물고 싶은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한국,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이자 비슷한 가치·목표 공유"
세계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이탈리아 총리가 자국에서 열리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아시아 순방을 나서고, 그 일환으로 동북아 끝에 있는 한국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로마 제국의 후예’, ‘명품의 나라’ 등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이지만 멜로니 총리의 이번 방한은 과거를 넘어 양국이 미래 동반자로 거듭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가토 대사는 “한국은 매우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일 뿐 아니라 비슷한 가치와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는 국가”라며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끼리 협력하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한국이 “소비재 기준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의 수입이 주요 아시아 수입국 가운데 인구 1인 기준으로 가장 높은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양국은 인구, 소프트 파워, 경제 발전 과정, 국제 외교 등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가족에 대한 강한 유대,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매우 닮아 있다”며 “패션과 우아함을 바라보는 감각 역시 공통점이 많다”고 언급했다.
조선 시대인 1884년에 수교한 한국과 이탈리아는 142년에 이르는 오랜 외교 관계를 이어온 사이다. 현재 유엔 내 ‘합의를 위한 연합’, 이른바 커피 클럽 회원국이기도 한 양국은 2018년 외교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며 협력의 폭을 넓혔다. 또한 이탈리아는 한국전쟁 당시 의료 지원 인력을 파병한 국가로, 당시 이탈리아가 세운 제68적십자병원은 휴전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멜로니 총리 역시 지난달 18일 방한 첫 공식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해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토 대사는 "총리는 일요일이었음에도 현충원 참배를 꼭 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도 (한국전쟁) 당시 가난했고 거리도 멀었지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이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고 언급했다.
도시, 문화 교류부터 반도체, 우주항공 및 아프리카 진출까지 전방위 협력 가능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난관리(Civil Protection) 역량 강화 ▲문화유산 및 경관 보호 ▲반도체 산업 협력 등 3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26~2030년 액션플랜’을 마련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방위적으로 협력을 진행하기로 했다. 재난관리와 문화유산 및 경관 보호는 이탈리아가 강점을 지닌 분야이고, 반도체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재난관리는 도시 중심 국가인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도시 관리 분야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지방 성장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가토 대사는 "우리는 로마라고 해서 밀라노보다 중요하지 않고, 밀라노 역시 피렌체보다 중요하지 않다. 역사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는 지방 커뮤니티를 매우 중시한다"며 "대사관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지방 정부들과의 외교에 주력하고 있고, 그 결과 점점 많은 한국 도시와 이탈리아 도시들이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소통을 강화하고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의 K팝 등 현대문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고려와 신라 등 한국의 전통 역사와 예술, 문화유산은 이탈리아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며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양국 협력 논의는 전통 산업을 넘어 첨단·신흥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가토 대사는 반도체 협력과 관련해 이탈리아에 있는 세계적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및 다양한 첨단 분야 중소기업들과 삼성,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간의 협력 가능성에 기대를 표했다. 그는 “특정 분야에서는 삼성 같은 대기업들도 스타트업들과 협력하고, 또 이들을 적극 장려하곤 한다”며 “이탈리아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소기업들이 많아 삼성이나 SK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주항공, 방산,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1964년 미국과 소련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독자 인공위성 ‘산 마르코 1호’ 발사에 성공한 우주 강국으로 지금도 레오나르도,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등 많은 세계적 항공우주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지난 2023년에 과기정통부, 지난 해에는 우주항공청이 이탈리아 우주청과 MOU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우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토 대사는 “나로우주센터에 간 적이 있었는데 로켓 기립장치가 이탈리아 기업 COMETTO가 만든 것이었다”며 “우주 분야와 관련해 우리는 한국의 야심찬 목표들을 함께해 나갈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이미 달 탐사 목표도 정했고, 화성 탐사까지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우주 강국이 되겠다는 비전도 분명하다 이러한 방향성은 과거에 우리가 추구해 왔던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 동석한 빈첸조 타마린도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경제 참사관은 라치오, 풀리아, 롬바르디아 등에 있는 항공우주 산학연 클러스터를 거론하면서 “한국은 이탈리아가 지금까지 발전시킨 이 모델에 매우 관심이 많다”며 이탈리아의 항공우주 클러스터가 한국 우주항공 산업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우주 강국답게 ‘산 마르코 1호’ 발사일을 ‘우주의 날’로 정하고 매년 성대하게 기념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탈리아 대사관 역시 올해 4월 22일 한국에서 ‘우주의 날’ 행사를 치를 예정으로, 특히 올해는 정상회담과 동계 올림픽에 이어지는 행사인 만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타마린도 참사관은 “올해는 (이탈리아 우주비행사) 윌터 빌라데이가 방한해서 그의 비전과 경험을 공유할 것이고, 우리는 이탈리아 및 한국 기업들과 B2B 세션을 가질 것”이라며 레오나르도를 비롯해 많은 이탈리아 항공우주 기업들이 참석 의사를 밝혀 왔다고 전했다.
한국과 이탈리아 간 협력 분야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멜로니 총리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실무진이 ‘마테이 계획’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테이 계획’은 멜로니 총리가 2024년 1월 난민 문제 및 자원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식 출범한 대규모 아프리카 협력 프로젝트로, 현재 14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는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통할만큼 아프리카와 밀접한 관계이다. 한국 역시 희토류 개발 및 시장 개척 등 차원에서 아프리카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아프리카는 양국 간에 또다른 접점이 되고 있다.
주한 대사 부임 전 아프리카의 니제르에서 대사로 재임하기도 한 가토 대사는 “아프리카는 우리 바로 옆이기 때문에 지정학 측면에서 항상 중요했고,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아프리카에 진출해 왔다”며 “한국과 이탈리아는 같은 가치관과 파트너십(동반자 관계)라는 접근 방식을 갖고 있고, 우리 모두 천연 자원이 부족해서 새로운 핵심 광물 공급망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대기업들이 아프리카의 특정 분야에 우리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이탈리아는 공공 부문 중심으로 접근하지만 민간 역할 역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한국과 이탈리아)는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쌓아온 현지 네트워크와 신뢰를, 한국은 투자·생산 역량을 갖고 있어 핵심 광물과 공급망 협력에서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동계올림픽, "아름다운 소도시 중심의 이탈리아 삶의 방식 보여줄 것"
한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이 어느덧 코앞에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2개 도시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첨단과 전통을 결합한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내세운 가운데 올림픽 이후에도 시설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시 재생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가토 대사는 “이번 동계올림픽은 처음으로 많은 소도시들에서 분산 개최된다”며 “이는 아름답고 잘 보존된 소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삶의 방식, 즉 우리가 어떤 나라이고 어떤 모델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해외에 수출하고 싶어하는 모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대회 진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이러한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네트워크와 교통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한국-이탈리아 정상 회담 이후 양국 협력이 본격화될 전망인 가운데 지난 2023년 9월 부임한 가토 대사 역시 앞으로 할 일이 부쩍 늘어나게 됐다. 대사는 남은 재임 기간 중 가장 성취하고 싶은 목표로 “정상 간 시너지를 이어가는 것”을 꼽으며 “이재명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이 성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가 떠날 때쯤이면 현재 24개 정도인 한국-이탈리아 자매 결연 도시가 2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임 이전부터 근무지로 한국을 강력히 희망했다는 가토 대사는 지난해 한복을 입고 100% 한국어로 연설을 해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가토 대사는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알리는 것 외에도 이탈리아에서 한국의 대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 음식과 전통문화, 예술이 이탈리아에서 더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어로 더 잘 말하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도 함께 전했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약력>
1990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입부
1993 주태국 이탈리아 대사관 이등 서기관
1999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경제국
2005 OECD 이탈리아 대표부 참사관
2009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제7사무국 개발협력국장
2013 주유엔 이탈리아 대표부 일등 참사관
2014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기사 작위 수여
2016 주파리 이탈리아 총영사
2021 주니제르 이탈리아 대사
2023. 9. 11~ 현재: 주한 이탈리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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